호국보훈의 달 6월엔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 수원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은 필동 임면수(必東 林勉洙) 선생이다. 일제에 맞서 조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의 생명, 재산 등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자, 삼일여학교(현 매향중·고) 설립 때 땅을 기부하고 교장을 역임했기도 했던 교육자였다.
6월은 임면수 선생이 태어난 달이다. 선생은 1874년(고종 11) 6월 13일 수원면 매향리(현 수원시 매향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집안은 수원에서 잘 사는 측에 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운동과 인재교육에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삼일학교 설립 등 교육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신민회 활동 등을 했으며 1912년 2월 엄동설한에 어린자녀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했다. 만주에서 신민회 경기도 대표, 이후 경학사(耕學社), 부민회(扶民會) 등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개척 사업을 펼쳤으며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관여했고 나중엔 제2의 신흥무관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도 역임했다.
무장 결사대원으로 독립투쟁을 하다가 1921년 2월 길림영사관의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때 혹독한 고문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석방 후에도 고문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고생하다가 1930년 11월 숨을 거뒀다.
선생의 부인 전현석(全賢錫) 여사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의 어머니’다. 전여사는 가산을 모두 기증하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낯 설고 추운 만주 땅으로 가자는 남편의 말에 두말 않고 따랐다. 만주로 망명한 뒤 통화현에서 객주집을 하면서 독립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이 쉬어가고 정보를 교환하는 거점이 됐다. 전 여사는 “항상 웃는 얼굴로 병을 앓은 동지들에게 음식을 가려 위로해주는가 하면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군인들을 격려하며, 총탄에 상한 병자에게는 약을 다려주고 붕대를 감아주면서 머지 않아 독립이 될 것이라고 위로”(허영백-‘광복 선열 고 필동 임면수 선생 약사’)했다.
“그 당시 독립운동 하는 자로 선생 댁에 잠을 안잔 이가 별로 없고, 전현석 여사가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어 실로 선생 댁은 독립운동가의 휴식처요, 무기 보관소요, 회의실이요, 참모실이며 보급처요, 정비실”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봉사 하던 전 여사는 1932년 별세했다.
부부의 장남 임우상(1893~?)지사도 1919년 국내에 잠입, 군자금을 구해 만주로 돌아가던 중 걸린 동상과 독감으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 집안의 역사를 아는 수원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늦었지만 2015년 선생의 동상이 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건립됐다. 앞으로 부인 전현석 여사와 아들 임우상지사의 동상도 그 옆에 함께 세워지길 바란다. 이 위대한 가족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