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루 아래는 길이 꼬불꼬불 더디어라
남녘서 북녘 바라보는 시나 읊조려보자
장락궁 종소리가 멀지 않으니
머리 돌려 침원을 어이 하직한단 말인가
(정조)

정조의 시를 다시 본다. 환궁하던 날 시운의 화답으로, 정조의 마음이 절절히 배어나온다. 차마 하직할 수 없어 거듭 돌아 뵈는 침원이 시행 너머로 길게 어룽거린다. 길도 꼬불꼬불 더디기만 하다. 

마음에 맺힌 속눈물 같은 길. 침통함이 사도세자 기일을 지나며 더 깊이 짚인다( 본래 윤 5월 21일 기일을 평달 음5월 21일로 해서 6월 30일이었음). 정조가 현륭원이며 화성을 오갈 때마다 쓴 시에는 효심이 굽이굽이 배어 있다. 원행은 물론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8일간의 축제로 열었을 때도 여러 편의 시로 마음의 품격을 보여준다.

거슬러보면, 효는 덕의 근본이었다. 도덕규범의 기초로 삼았으니 효가 유교의 정신적 근간처럼 보였다. 조선의 정치며 역사를 흔들 만큼 효라는 덕목의 영향력도 굳셌다. 그렇게 사람의 마땅한 도리로 섬기던 효는 이제 점점 자신할 수 없는 실천의 어려움이 되고 있다.

세태가 그러하니 시의 죽비가 더 세게 닿는다. 나는 어떠했던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돌아볼수록 붉어진다. 그럼에도 정조의 효는 대부분 엄두도 내지 못할 높은 실현이다. 무엇보다 효를 이루는 부모 ‘공경’이라는 마음의 유지부터가 어렵다. 그래서 좋은 본을 우러르며 자신을 거듭 가다듬게 해왔겠지만. 

시처럼 돌아 뵈는 길. 누구나 마음의 굽이를 품고 살리라. 그런 사모함마저 옛일로 밀리는 듯싶은 시절, 더디 가는 길들을 읊조려본다. 그 섶에 담긴 마음의 깊이를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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