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문 거북시장 새숱막거리 축제에 모인 인파. (사진=김우영 필자)
장안문 거북시장 새숱막거리 축제에 모인 인파. (사진=김우영 필자)

“장안문 거북시장이라...거기 시장이 어디 있는데?”

맞다. ‘시장’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먹을거리가 많은 상가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예전엔 시장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과일과 채소 생선 등을 팔던 점포와 노점이 늘어선 시장의 면모가 있었다. ‘거북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의 땅이 많아 ‘거북시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거북시장의 역사는 더 길다. 조선 정조시대 수원화성 축성공사가 시작되고 전국에서 일꾼들이 수원으로 왔다. 축성공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축성공사 인부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도는 곳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장안문 밖에 주막거리가 들어섰다. 일을 마친 인부들이 이곳으로 와서 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향수를 달랬다. 새로 들어선 주막거리는 ‘새 술막거리’였다. 나중에 ‘새수막거리’ ‘새숱막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이 이름을 사용한 ‘새술막거리 축제’도 열리고 있다. 이곳엔 인부 외에도 전국에서 한양을 오르내리던 상인이나, 과거길 선비가 들러 목을 축이거나 잠을 잤다. 게다가 인근에 영화역이 있어 관원도 퇴근 후 들렀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런 전설도 있다. 화성축성공사 도중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장안문 밖에 주막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부들은 받은 노임을 이곳에서 술값으로 쓰고 그 돈은 다시 인부들에게 지급함으로써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구전될 뿐 기록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다.

새술막거리의 제2 전성기도 있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곳은 수원의 ‘핫 플레이스’였다. 팔달문 상권이 쇠퇴하고 북문상권이 뜨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었던 나이트클럽과 아구탕 집, 고기 집, 해물탕 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관도 십 수 개나 들어섰다.

하지만 상권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또 이동했다. 시청 뒤쪽 일명 ‘박스’지역으로, 영통으로, 수원역으로...요즘은 성안 행궁동 지역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북문 상권이 쇠퇴하면서 거북시장은 심각한 불황을 맞았다.

이때 발 벗고 나선 사람이 도시계획학 박사인 (사)화성연구회 최호운 이사장이다. 당시 수원시에서 도시계획을 담당하던 그는 밤낮없이 거북시장 살리기에 전념했다. 상인, 도시계획, 조경 전문가와 (사)화성연구회 회원 등 지역 문화 인사들도 합류했다. 나도 초창기인 2008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손을 보탰다. ‘거리를 아름답게 재생시켜 시민과 관광객이 찾아오는 품격 있는 거리로 재탄생시키자’는 것이 경관협정 프로젝트의 지향이었다.

당시 최 박사는 “다시 태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거북시장이 가지고 있는 건강, 장수, 웰빙, 행복의 이미지를 담은 느림보 타운으로 홍보하고 영화역, 새수막길 등 문화재를 복원하고 역사와 전통이 가미된 특화거리 축제 등을 유치,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는 시장으로서 시민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매력있고 활성화된 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최 박사를 주축으로 여러 사람이 적극 노력한 결과 국토해양부와 수원시는 ‘2011년 장안문 거북시장(느림보타운만들기) 도시활력증진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거리의 풍경은 확 바뀌었다.

거북시장 활성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이사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거북시장 활성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이사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모양만 변화한 게 아니다. 이 거리에서 열두 달 내내 행사가 펼쳐졌다. 새숱막거리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대표적인 행사가 2011년 시작된 ‘새숱막거리 축제’다. 새숱막은 전기한 것처럼 ‘새 술막’이 변형된 지명.

지역동아리 팀 공연과 태권도 시범공연, 막걸리제조 시연, 초대가수 공연, 힙합댄스, 악단 연주, 색소폰 공연, 전자바이올린 공연, 평양예술단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와 풍선아트와 페이스페인팅, 사은품 증정이벤트도 진행됐다. 행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숱막거리 축제 외에도 고유제, 척사대회, 장승축제, 자동차 없는 날, 연등제, 음식한마당축제, 풍물축제 등 축제가 열리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19로 대부분 중지됐지만 머지않아 또 다시 들썩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다시 좋은 소식이 들린다. 거북시장이 경기도 주관 ‘전통시장 깔끔 음식업소 만들기’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 사업은 영업장 규모가 작고 오래된, 전통시장 내 식품취급업소를 대상으로 현장 컨설팅을 한 뒤, 위생시설을 맞춤형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 쾌적한 위생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거북시장 내 24개 업소가 조리장(천장·바닥·출입문·환기시설), 화장실, 장비(냉장고, 진열케이스) 등 시설 보수비용의 80%(300만원 이내)를 지원받게 됐다.

거북시장이 그 옛날 새술막거리의 영화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최호운 이사장, 코로나19 백신 접종 모두 마치면 여기서 한번 뭉칩시다. 옛날 일 생각하면서. / 김우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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