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명을 아는 민족입니다.

놀 때면 신바람 나게 놀고 일할 때면 신명나게 일하는 근성(根性)이 있는 겨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명나는 근성을 드러낼 지도자를 바로 만나지를 못하고 타고난 신명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한(恨)을 쌓으며 살아왔습니다.

동포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잠들어 있는 신바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여건만 갖추어 주면 세계 1등, 국민 1등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불씨가 되어 꺼져가는 불을 다시 되살려야 합니다.

미국의 케네디 전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존경하는 정치가가 누구십니까?"

이 질문에 케네디 대통령이 답하였습니다.

"일본의 정치가 '우에스기 요잔'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을 들은 기자들 중에 아무도 우에스기 요잔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려지게된 우에스기 요잔은 250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막부시대에 '요네자와 번'의 번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일본의 북부  요네자와 번이란 곳은 험한 산을 끼고 있는 지역이어서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한 지역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번주가 경영을 너무 방만하게 하여 번 자체가 부도나게 될 정도로 궁핍하여졌습니다.

당시의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 아래 각 지역의 번은 봉건 체제로 다스려져 번주는 왕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요네자와 번은 경영의 실패로 번을 해체하고 중앙정부에 번을 바치자는 논의를 하여야 할 정도로 쇠락하였습니다.

그런 때에 번주가 죽고 18세의 새로운 번주가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18세의 철없는 나이의 번주가 오게 되자 번민들은 "이제 요네자와 번은 진짜 희망이 없구나"하고 탄식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우에스기 요잔'이란 이름의  젊은 번주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추운 겨울에 국경을 넘어 자신이 통치할 요네자와 번으로 들어갔습니다.

국경 지방에 들어서니 생활고에 지친 번민들이 다른 번으로 탈출하고 빈집이 즐비하였습니다.

밤이 되어 유숙할 만한 집이 없어 들판에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하는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다시 수도를 향하여 출발하는데 우에스기 요잔이 한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때마침 자기 앞에 화로가 놓여 있었는데 불이 꺼져 재만 싸늘한 화로였습니다.

그 화로를 보며 불 꺼진 화로의 신세나 부도나게 된 요네자와 번의 처지나 18세 나이에 번주로 부임하는 내 신세나 같은 신세로구나 하며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젓가락으로 재를 뒤적이다 바닥에 불씨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 번에서 백성들의 불씨가 되자"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경제와 사회에 18세에 번주로 부임하여 불굴의 개혁 정신과 20년에 걸친 인내의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신분의 차이를 벗어나서 신하들과 백성들을 이끌면서 앞장서서 본을 보이는 삶의 방식으로 무너져 가는 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성공한 개혁에는 3가지 요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최고 지도자 자신의 헌신과 희생과 실천입니다.

둘째는 낙심하고 있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점입니다.

셋째는 서로 믿고 살아가는 '신뢰 사회'를 세운 점입니다. 신뢰가 요네자와 번의 재산 1호가 되게 하였습니다.

넷째는 경제 건설을 우선 순위로 삼아 경제를 일으킴에 전심전력을 다한 점입니다.

비록 일본의 지도자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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