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제롬 블래트너’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상대를 믿지 않으면서 상대가 나를 믿기 바라는 것은 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또다른 의미로는 신뢰란 한순간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쌓아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같은 담론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물론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적용된다. 

하지만 세상 일은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없다. 점점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우리 사회를 보면 더욱 그렇다. 

요즘 부쩍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정부의 신뢰는 국가와 사회의 신뢰 토대가 되고 국력이자 국가의 자산이라는 데 말이다. 

마치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며칠 전 국가신뢰도가 대폭 상향됐다는 홍보를 띄웠다.  

이명박정부 31위였던 OECD 국가신뢰도가 20위로 뛰어 올랐다는 것이다.

거기에 '국민의 대상으로 정부를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에 45%가 ‘믿습니다’라고 답했다는 조사결과도 덧붙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외화내빈’ 그 자체다.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는 20위를 ‘단계가 높아진 것’으로 가려 놓았기 때문이다. 

평균 80점대 상위국가와의 점수 차이도 많이 나 절반 밖에 안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정부의 대(對)국민 신뢰도 홍보, 과연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우리 사회는 각 계층별, 주체별로 불신의 골이 깊다. 

정부와 국민은 물론 기업과 소비자, 사용자와 노동자. 심지어 가족사이에서도 신뢰가 높지 않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불신의 깊이만큼 사회적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이런 불신은 고스란히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 때문에 나날이 반목이 깊어지고 있는데 신뢰가 더욱 떨어진다면 살맛나는 사회는 점점 더 요원해짐은 자명하다.

엊그제 해프닝으로 끝난 55~59세 백신 예약 중단 사태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분명 정부의 실책이며 무능력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국민과의 소통부재다. 지금의 정부가 국민과의 불통 사례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번 백신사태를 보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 환란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국민 생명과 직결된 방역관련 정보는 국민과 숨김없이 소통해야 한다.

백신확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들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 판단을 배제함은 당연하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 

그동안 국민들은 정부의 방침대로 일상을 멈추고 순응해왔다. 

개인 사생활까지도 불이익을 감수하며 방역에 협조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국민과의 소통부재로 인해 신뢰가 깨진다면 앞으로 국민들의 인내와 배려, 양보는 기대할 수 없다. 

아울러 이번 기회로 지금보다 정부의 신뢰가 더 떨어진다면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