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 공포안이 14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되었다. 탄소중립에 대한 속도전이 선언된 셈이다. 탄소중립의 개념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순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넷제로(Net-Zero)라고도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사용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거나 녹지를 조성하여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흡수량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흡수량을 늘리는 것도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모호한 실정이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탄소배출이 많은 업종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이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야는 없다. 물론, 물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돗물을 공급하는 과정에도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상수도 공급 과정에서 미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5%가 배출되고, 미국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3%가 물 관련 분야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는 효율적인 물 관리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상수도와 하수도로 대표되는 인공계 물순환뿐만 아니라, 빗물관리로 대표되는 자연계 물순환도 탄소발생과 흡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순환이란 빗물이 땅위에 떨어져 하천, 호수, 바다 등에 저장되었다가 증발하여 다시 빗물로 되는 연속된 흐름을 말한다. 자연 유역에서는 땅위에 떨어진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저류됨으로써 유출량을 저감하고 지하수를 충진하게 된다. 유역이 머금고 있는 이 빗물은 하천에 유지유량을 공급하고 증발산에 의한 온도저감 효과를 가져온다. 

자연유역에서 머금고 스며들던 자연계 물순환은 도시가 개발되면서 전혀 다른 형태로 왜곡된다. 도시침수 방지를 목적으로 한 빗물의 신속배제 원칙으로 인해 강우 시에는 유출량이 증가하고 유출속도가 빨라지며, 건기 시에는 도시가 머금고 있는 물이 부족해 도시는 메말라간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왜곡된 물순환이 건전한 물순환 체계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시가 빗물을 머금고 스며들 수 있게 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빗물을 침투, 저류,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빗물관리 기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빗물을 침투시킬 수 있는 침투시설과 빗물을 모아서 이용할 수 있는 빗물저금통이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도시가 머금고 있는 물이 많아져 촉촉한 도시가 되면 도시의 열축적이 줄어들고 증발산에 의한 온도저감 효과가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냉방을 위한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어 탄소발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빗물을 모아서 이용할 경우 상수도 사용량을 줄여 수돗물의 장거리 이송에 따른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도시에서의 물순환을 친환경적으로 회복할 경우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는 의외로 크다. 환경부도 이를 인지해 2016년에 전국 5개 도시를 물순환 선도도시로 선정하여 도시의 물순환 회복을 위한 친환경 빗물관리 사업을 시행하였다. 또한,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15여개 지자체가 물순환 관련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환경부의 시범사업과 지자체의 물순환 조례가 시행되어 물순환에 대한 수요와 기대는 넘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뒷받침할만한 법적 근거는 부재한 실정이다. 

국내의 경우 물관리기본법, 물환경보전법, 물관리기술발전 및 물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수자원의 조사ㆍ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서 물순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용어정의에 대한 일관성이 부족하고 법률 소관부서마다 각기 다른 개념으로 용어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물순환의 명확한 개념 정립 및 물순환 회복을 위한 실천방안은 아직 모호하다.

도시의 물순환 회복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고, 물순환 회복에 의한 효과는 입증되었다. 이제 속도전을 위한 가속이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물순환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과 실행방안을 담고 있는 관련 법령을 제정하는 것이다. 물순환 회복이 왜곡되어 있는 도시지역으로 한정하여 '도시물순환촉진법' 제정을 제안해 본다. 

도시물순환촉진법이 제정되면 여러 법에 분산되어 있는 물순환에 대한 정의와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도시의 물순환 개선을 위한 지표가 개발되어야 하며, 실천력을 담보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방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탄소중립 기본법 제정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속도전은 시작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이행방안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친환경 물순환 회복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아무쪼록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도시 물순환 촉진법이 마련되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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