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자 如詩칼럼] 멍을 깊이 때리고 일어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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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如詩칼럼] 멍을 깊이 때리고 일어나듯
  • 정수자 시인
  • 승인 2021.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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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 시인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자처럼

생각이 아궁이 같은 저녁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와서

나는 자꾸 섶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국, 「상강霜降」 전문)


서리가 내리는 상강 즈음. 느닷없는 서리는 농작물에 해를 크게 끼친다. 기온이 뚝 떨어질 때 된서리는 더 그렇다. 농작물뿐이랴, 사람의 나날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면 힘이 더 부친다. 떨어지는 기운만큼 삶의 생기며 용기며 희로애락 같은 감성도 풀이 죽을 수 밖에 없다.

시 속의 “생각이 아궁이 같은 저녁”에 오래 머문다. 아궁이는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자”가 아니라도 멍 때리기 최고의 장소. 요즘 유행하는 ‘불멍’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본업에 힘이 들거나 세상에 뒤처질 수 없어서거나, 불멍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좋은 휴식으로 떠올랐다. 불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쉬어주기. 대부분 자기 착취처럼 살아가는 일상에 잠시나마 무념무상의 쉼을 주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는 것이다.

멍 때리기는 숨차게 돌아가는 세상 속의 고요한 쉼표다. 왜 그리 여유 없이 돌아쳐야 하는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쉬다 보면 휴식에 따른 충족감이 더 크게 돌아온다고 한다. ‘불멍’뿐 아니라 물을 보며 마냥 쉬어주는 ‘물멍’처럼 다양한 멍 때리기가 젊은이들에게 각광 받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코로나19 탓에 여행을 맘껏 못 나다니니 내 안의 여행 같은 ‘멍’을 더 많이 찾는 게다.

예전에는 멍하다는 게 핀잔이나 타박으로 들렸다. 멍하다는 표현에 지적이나 폄훼의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쓰던 표현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는 휴식의 한 방식으로 삼은 것은 발상의 새로운 전환이다. 그런데 멍하게 쉬는 것을 두루 즐기게 됐다니 더 신선한 역발상의 진전이 아닐 수 없다. 발전의 가속으로 몰아친 현 사회의 피로지수가 너무 높다고 느껴도 거기 따른 이의 제기를 할 새 없이 흘러가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휴식의 달콤함도 잠시뿐. 일상으로 돌아가니 가을이 깊어간다. 멍 때리기에서 찾은 창의와 자신이 있다면 그 힘으로 또 일상을 꾸려야 한다. “누구를 제대로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그리하여 서리 내리는 상강 앞에 풀이 더 죽더라도 다시 마음을 내어 힘을 내어 살아갈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