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창설 50주년을 맞은 지난 1995년, 유네스코는 조금은 특별한 날을 제정했다.

마하트마 간디 탄생 125주년이던 그 해를 ‘관용을 위한 국제연합의 해’로 정하고 11월16일을 ‘국제관용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이유는 국제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의미에서였다.

관용은 인권을 비롯해 평화, 민주주의 등 많은 가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후 유네스코는 4반세기 넘게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2세들에게 관용 교육을 시킬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관용은 프랑스말로 '톨레랑스(tolerance)'라고도 한다.

이 말은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자타(自他)경고의 뜻을 품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를 존중해 주자"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다른 가치관, 다른 삶의 양식, 다른 종교, 다른 신념,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이 두렵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매 한가지다.

 때론 이러한 감정이 더 확대되어 화가 되거나 증오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전쟁과 폭력 대부분도 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전쟁을 예로 들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보이면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비난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대부분의 갈등은 이같이 ‘다른 것은 곧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라는 정신이 함축되어있는 관용은 종교적 갈등과 빈곤,경제적 냉전이 더 심화된 이 시대의 정신으로 더욱 요구되고 있다.

관용은 또한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라는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세계는 빠르게 연결되고 상호협력하고 받아들이며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어느 개인도 이 연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구 반대편의 사건이 며칠 내에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시대 모두가 함께 할 수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때문에 관용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인격적 태도인 동시에 나와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도 작용한다.

‘관용지수’가 한 나라의 사회통합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관용지수는 OECD 31개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처음‘국제관용의 날’이 제정된 1995년은 그나마 25위였으나 지난해 꼴찌로 내려앉은 것이다.

거꾸로가는 우리의 관용의식.

‘관용의 날’인 내일만 이라도 모두가 반성하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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