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세상을 떠난 전두환씨가 염라대왕 앞에 앉아 있다. 전씨는 “드디어 AP통신에서도 나를 부처로 공식인정해 줬다니까요!”라고 말한다. 염라대왕이 앞에 놓인 컴퓨터를 검색해보니 정말 ‘부처’라고 나와 있다. 다만 ‘붓다’라는 뜻의 부처가 아닌 ‘부처(butcher:학살자)’다. 25일 박재동 화백이 한 신문에 올린 그림판 내용이다.

사망하는 그날까지 광주에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대법원이 확정한 추징금까지 내지 않은 그는 정말로 자신의 과오를 모르고 있을까. 알면서도 끝까지 잡아 뗀 것일까.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확인할 길이 없지만 궁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 씨는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과 뇌물수수죄로 무기징역과 추징금이 확정됐다. 예금 자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내지 않은 추징금은 약 956억원이나 된다. 추징금을 언제 낼 것이냐는 정의당 부대표에게 “네가 좀 내주라”라고 말해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국가지도자들의 역사적 책임은 생사를 초월해 영원하다” “전두환이 역사와 국민에게 지은 무거운 죄는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고 역사에 그 죄상을 영원히 기록해 후손만대에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역사의 죄인에게 죽음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의 성명에 공감한다. 이 시장의 말처럼 끝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5·18 진실에 대해 굳게 입을 닫은 전두환 씨의 죽음에 광주시민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 한 맺힌 40여 년을 살아온 5.18 피해자들은 가족들이라도 장례를 치르기 전에 사죄해주기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시간에 앞서 계엄군의 총탄에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후유증에 시달린 유공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이광영씨(68) 씨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잊고 아버님 품으로 가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승려였던 그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광주를 방문했다,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뒤 환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활동을 했다. 계엄군이 쏜 총에 척추를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심한 통증 속에 살아야 했다. 혼자 갔다,

저승에서 전 씨는 이광영 씨를 만났을까. 만났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씨 앞에서도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 나는 모른다.”고 이야기했을까.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