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최형국.
필자 최형국.

수원은 참 복 받은 동네다. 조선후기 가장 성군으로 평가받는 정조(正祖)의 명으로 건설한 수원 화성(華城)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발달한 도심지에 전통을 상징하는 건물이 자연스럽게 둘러싸고 있으니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지는 모양새다. 전통이라는 것이 그냥 과거의 구닥다리로 머물러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미래비전을 수원 화성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더 빠르게 변화한다. 손에 들고 다니던 휴대폰의 진화속도를 보면 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휴대폰에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것은 <스타워즈>나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고,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빠른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사람에 대한 ‘소외와 무관심’이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직접 얼굴을 보고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화상회의를 하는 것이 더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빠른 세상 속에서 수원화성은 굳건하게 몇 백 년을 버티며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있는 것이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제는 전 지구인들이 꼭 한번 구경해 보고픈 그런 도시가 된 것이다. 그저 TV속 화면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원 화성의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를 세계인들이 직접 보고 싶은 도시로 인정받은 것이다. 요즘은 수원 화성 안 행궁동이 새로운 명소로 부각되며, 수많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거리로 거듭나고 있기도 하다. ‘행리단길’ 새로운 이름으로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수원 화성 성곽 둘레길을 걸으면, 자연스레 손을 잡고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혼자 홋홋하게 명상하듯 걸어도 좋다. 그저 눈길 가는 데로, 발길 이끄는 데로 가도 그곳에는 정조 임금님이 펼친 이곳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거기에는 정조의 애닲은 아비에 대한 효(孝)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의빈 성씨(宜嬪 成氏)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포근한 이야기꺼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곽’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곳을 지켰던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壯勇營)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원래 성(城)이라는 것이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방어시설이기에 그곳을 방어했던 군사들이 누구였는지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꺼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군사무예서다. 정조임금님의 명령으로 만들었으며, 수원 화성을 방어한 부대인 장용영에서 책의 편찬을 도맡아 하고, 직접 군사들이 매일같이 수련했으니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조시대에는 수원화성에는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를 이곳저곳에서 훈련하였다. 당대의 기록인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이나 <장용영고사(壯勇營故事)>를 살펴보면, 세세한 무예훈련 내용은 물론이고 군사들의 이름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병서가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과 궁합이 딱 맞는 것이다. 그 사정은 조금 복잡하지만, 아쉽게도 <무예도보통지>는 북한의 제1호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육군박물관 등에도 여러 권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더욱이 이 병서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수원시 향토유적 21호로 지정하여 보호 육성하는 도시가 수원이기에 통일을 향한 교두보를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열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를 수련한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이며, 세계유일의 문화자산인 것이다. 또한 20년 가까운 세월을 수원 화성행궁에서 매일같이 시범보이고 있기에, 남북이 좀 더 가까워지는 날 평양에서 우리의 무예를 함께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이념과 사상은 조금 멀지라도, 무예를 통해 흘리는 땀 한 방울의 가치와 몸에 대한 동질성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예를 함께 나눈다면 수원 화성의 가치와 의미가 더 빛날 수 있다. 그리고 수원의 시민들이 함께 수련하고 수원의 아이들이 전수를 받는다면, 수원 화성은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것이다.

조금은 먼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여유를 되찾아 볼 때이다. 코로나에 지쳐 수원 화성 성곽에 가득 찼던 가을도 저만치 떠나가려고 한다. 울긋불긋 물든 낙엽하나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며 그곳을 걷는 수원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곧 하얀 눈이 소복하게 화성에 내려앉으면, 그 정취에 또 한 번 반할 수 있을 테니까……. 사계절이 모두 매력적인 수원 화성.

수원 화성에 겨울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다. 좀 더 따스해지도록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곳을 걸어보자. 그럼, 겨울 추위도 더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수원 화성에서 함께……. (사진=필자 최형국)
수원 화성에 겨울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다. 좀 더 따스해지도록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곳을 걸어보자. 그럼, 겨울 추위도 더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수원 화성에서 함께……. (사진=필자 최형국)

■ 최형국은?
<무예도보통지>에 담긴 무예24기를 수원 화성에서 27년 동안 한결같이 수련했으며, 무예를 통한 몸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정역 무예도보통지-정조, 무예와 통하다>  <조선후기 무예사 연구> <병서, 조선을 말하다>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등 10여권의 저역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2021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이번 연재 칼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 화성>과 <무예도보통지>에 담긴 정조의 생각, 조선후기 문화상을 비롯하여 무예 자세에 연관된 고사의 설명 등 칼잽이의 눈으로 무예를 인문학적으로 풀어 보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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