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 서문 중 ‘止如堵墻 動如風雨(지여도장, 동여풍우)’의 문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번암의 글씨에는 힘과 품격이 느껴진다. 글씨보다 정조의 마음을 담은 문장에는 더할 나위 없는 무예철학이 담겨 있다. 
'무예도보통지' 서문 중 ‘止如堵墻 動如風雨(지여도장, 동여풍우)’의 문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번암의 글씨에는 힘과 품격이 느껴진다. 글씨보다 정조의 마음을 담은 문장에는 더할 나위 없는 무예철학이 담겨 있다. 

 '止如堵墻 動如風雨(지여도장, 동여풍우)'
 '멈출 때에는 담장처럼 굳건하게, 움직일 때는 비바람처럼 매섭게'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무예24기를 담은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서문에 등장하는 말이다. 서문은 정조가 직접 글을 내려 영의정이었던 번암(樊巖) 채재공(蔡濟恭)이 글씨를 쓴 것이다. '止如堵墻 動如風雨(지여도장, 동여풍우)'에는 정조가 느꼈던 군사와 무예의 철학이 담겨 있다.

문장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렇다. 군사들이 단체로 오와 열을 갖춰 진법을 구성하여 멈춰 있을 때에는 담장처럼 굳건하게 지켜야 하며, 돌진하는 적에 맞서 싸울 때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듯 매섭게 움직이라는 뜻이다. 어찌보면 참 단순한 이야기인듯 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전에서도 반드시 익혀야 할 전투행동 철학이 담겨 있다.

적의 공격은 항상 매섭다. 전통시대에 하늘 가득 수천 개의 화살이 날아오고, 눈 앞에는 지축을 흔들며 돌격해 오는 기병과 날카로운 창칼로 무장한 수천의 군사들이 밀고 들어오면 제아무리 훈련을 거듭한 군사들도 심장이 멎을 듯 두려움이 몰려온다. 오직 내가 믿을 것은 옆에 있는 피를 나눈 전우와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들의 명령뿐이다.

현대전도 마찬가지다. 굉음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먼저 전장을 강타하고 이어지는 빗발치는 총탄에 비명소리마저 화약내음에 가려지는 것이 전투현장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역시 전우에 대한 믿음과 명령에 대한 철저한 수행이 가장 선결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 지옥같은 전투현장에서 담장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지키는 것이 군사된 자의 숙명이고 존재이유인 것이다. 그 굳건함은 쉼 없는 훈련을 통해서 키워지는 것이다. 어떤 절박한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옆에 함께 목숨걸고 버티고 있는 전우를 믿고 진이 깨어지지 않도록 버텨내는 것이다. 조선시대 진법 훈련의 최종 결과물은 전우를 믿고 적의 공격 형태에 따라 무기를 바꿔가며 진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TV사극이나 영화에서 흔히들 보는 사각형의 방진(方陣)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공격과 방어에 안정적으로 대처하도록 집단으로 훈련하는 것이 진법이다. 방진 이외에도 원형의 원진(圓陣), 앞이 뾰족한 예진(銳陣), 앞이 오목한 곡진(曲陣) 등 오행진 형태의 기본 진형이 있다. 이외에도 학이 날개를 펼쳐 적을 포위한다는 학익진(鶴翼陣)이나 뱀이 기어가듯 길게 늘어 선 장사진(長蛇陣)과 같은 진형은 일상의 모습에서도 비유가 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한 진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나의 목숨 뿐만 아니라 옆의 전우들도 목숨을 지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담장이 무너지면 도둑은 언제든지 우리 집을 약탈할 수 있기에  우리 집을 늘 지켜주고 있는 담장처럼 굳건하게 버티라는 것이다. 

거기에 적의 움직임에 따라 군사들은 비바람처럼 빠르게 대응하며 적에게 역습을 가하라는 것이다. 오로지 방어만 한다면, 아무리 튼튼한 방벽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 적 공격의 틈을 엿보아 언제든지 빠르게 반격하고 더 나아가 적의 근원지까지 돌격해야 전투의 끝이 보이는 것이다. 무예훈련은 진형을 안정적으로 방비하는 마음을 키우고, 비바람처럼 빠르게 몸으로 적을 공격하는 훈련이 핵심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방패와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야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정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에는 그런 마음과 몸을 다부지게 만드는 지킴의 정성이 들어 있다. 세상사 매일 일상의 전투를 치루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런 지킴의 마음이 중요하다. 그저 몇 백년 전의 군사 무예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와 몸 쓰임이 그것 안에 온전히 담겨 있다. 그래서 지금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 수련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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