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표지의 모습이다. 저 여덟 개 글자 중 ‘통(通)’이라는 글자를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정조가 왜? 그런 책이름을 지어서 내렸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표지의 모습이다. 저 여덟 개 글자 중 ‘통(通)’이라는 글자를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정조가 왜? 그런 책이름을 지어서 내렸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대전통편(大典通編)>, <병학통(兵學通)>,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통’해야 산다. 이 세 권의 책은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正祖)의 명으로 만든 것으로 모두 동일하게 ‘통(通)’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책들이다. 유독 정조는 ‘통(通)’이라는 글자를 국정운영이나 군사조직인 군영운영에 자주 사용했다. 필자는 그래서 정조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조가 이 ‘삼통(三通)’으로 조선을 다부지게 만들고자 하였다라고 강변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책을 편찬한 순서상으로 보면 <병학통(兵學通)>이 가장 먼저다. 이 책은 1776년(정조 즉위년) 국왕의 명령을 받아 형조판서 겸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였던 장지항(張志恒)이 편찬한 군사훈련에 관련된 진법서(陣法書)다. 

이미 조선후기에는 <병학지남(兵學指南)>이라는 진법서가 가장 폭넓게 군사훈련서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이름에 등장하는 ‘지남(指南)’처럼 마치 언제나 방향을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나침반’역할을 했던 병서였다. 그래서 전통군영에서 지휘관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이 병서의 훈련 내용을 입으로 줄줄 암송해야만 했다. 만약 암송실력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평생 하급군관으로 머물렀다.

그런데 이 병서는 중국의 병서인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요약본과 같은 성격이었다. 실제로 조선군들이 이 병서에 수록된 방식으로 훈련을 하다보니, 약간의 괴리감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중앙군영은 물론이고 지방군영에서도 이 병서로 훈련을 진행했는데, 조금씩 훈련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났다. 그렇게 100년 이상이 흘러가니, 조선의 중앙군영이라고 할지라도 각각의 군영마다 훈련방식이 조금씩 다르게 변해 버렸다. 

예를 들면, 중앙 군영이었던 <훈련도감>에서 진법을 전개하는 방식과 <금위영>에서 훈련하는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각각의 군영 자체 훈련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때는 말 그대로 서로 따로 노는 속된 말로 ‘당나라 부대’가 된 것이다. 거기에 대장을 비롯한 군영 지휘관이 바뀔 때마다 군사훈련 방식을 바꿔 버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침반이 정확하게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데, 그때그때 상황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니 그것을 따르는 군사들은 혼란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것을 새롭게 통일시키기 위해 <병학통(兵學通)>을 만들어 일단 중앙군영의 훈련부터 통일시키도록 만든 것이다.

그 다음 ‘통’은 <대전통편(大典通編)>이다. 이 책은 법전(法典), 즉, 조선의 법치를 규정하는 법률책이다. 국가가 새롭게 탄생하면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국가의 기강을 규정하는 법률책이 가장 먼저 나와야 한다. 조선의 경우도 전기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만들어져 육전(이전·호전·예전·병전·형전·공전)을 단단하게 굳혔다. 그리고 영조대에 <속대전(續大典)>이 만들어져 그 사이 변화된 내용을 법전에 추가 혹은 변형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조는 새롭게 1785년에 <대전통편(大典通編)>이라는 새로운 법전을 전국에 반포한다. 그 이유는 <병학통>과 비슷하다. 전대에 변경된 <속대전(續大典)>이외에도 <오례의(五禮儀)>를 비롯한 법전과 비슷한 효력이 있는 책들이 많아 너무 복잡하고 난해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통일이 안 된 법률은 집행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 그 자체로 혼란이다. 

마지막 ‘통’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다. 이 책의 편찬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군사들의 무예훈련 통일에 있다. <병학통>에서 설명했지만, 각 군영의 군사들이 동일한 무예라고 할지라도 각 군영마다 자세도 다르고 순서도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금위영에서 본국검을 훈련하면 다른 군영에서는 끝에 두 번을 찌르는데, 여기서는 한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다. 본국검은 물론이고 예도, 제독검, 쌍검, 왜검, 월도, 당파 등 여러 가지 무예의 상황도 비슷했다. 그래서 군사 무예 훈련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통’자를 집어넣은 것이다.

‘통’에는 그저 통일화시킨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소통의 마음’이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 보면, ‘통즉불통(通卽不痛)이요,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했다. 즉, 통하면 아프지 아니하고, 통하지 않으면 아픈 것이다. 작은 모세혈관부터 굵은 척추까지 그리고 뇌까지 잘 소통해야 건강하다. 이는 개인의 몸은 물론이고, 국가라는 거대 조직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시민부터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까지 잘 소통해야 나라가 건강한 것이다. 정조의 ‘삼통’에는 그런 조화로운 소통의 철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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