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설날이다. 음력 1월 1일이다. 예전엔 양력설을 권장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전통설이 ‘신정(新正)’에 밀려 ‘구정(舊正)이 된 적도 있다.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하는 이들도 꽤 많지만.

어쨌거나 이젠 설이 우리 전통 명절의 자리를 되찾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설은 한자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한다. 삼가한다는 뜻의 신일(愼日)이란 말도 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리라 다짐하는 새해 첫날이므로 함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 날, 말(牛)띠 날, 쥐(子)띠 날, 돼지(亥)띠 날, 2월 초하룻날이 신일(愼日)이다.

설날 아침, 눈 내린 화성행궁. 저 용맹한 장용영 장수의 기운이 모든 시민의 가정을 지켜줬으면... (사진=김우영 필자)
설날 아침, 눈 내린 화성행궁. 저 용맹한 장용영 장수의 기운이 모든 시민의 가정을 지켜줬으면... (사진=김우영 필자)

설은 순수 우리말이다. 그런데 해석은 각기 다르다.

설의 어원이 나이를 뜻하는 ‘살’에서 왔다는 설은 설득력이 있다. 산스크리트어 ‘살’은 해가 돋아나듯 '새로 솟는다'는 뜻이다. 또 다른 뜻도 있다.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을 뜻한다니 설과 맞아 떨어진다. 퉁구스어에서는 ‘잘’, 몽골어에서는 ‘질’이라고 한단다.

‘섣달’이란 말도 ‘설이 드는 달’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1월이 아닌 12월이 섣달일까? 한 해의 첫 달을 어느 달로 잡았는가에 따라 바뀌곤 했기 때문이란다. 음력 동짓달인 음력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고 12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잡기도 했다. 도서출판사 예담이 펴낸 ‘우리말 1000가지’에 따르면 “음력 12월 1일을 설로 쇠었다. 그래서 음력 12월을 설이 드는 달이라 하여 ‘섣달’이라 한 것이다. 후에 음력 1월 1일을 설로 잡으면서도 그전에 음력 12월을 ‘섣달’로 부르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원래는 ‘설달’이던 것이 ‘ㄷ’과 ‘ㄹ’의 호전현상에 의해 섣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다. 명절이 다가왔지만 가난해서 춥고, 차례상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배고파서 그렇게 서러웠을까. 부모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슬펐을까.

어느덧 10년이 다돼 간다. 부모님이 안 계신 설을 맞는 세월이.

2012년 3월 어머니가 가시고 이듬해 4월 아버지도 가셨다.

이번 설을 앞두고 산소에 가서 미리 부모님을 뵙고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도 다 두고 우리 4남매만 다녀왔다.

한명은 국과 밥을, 한명은 나물과 전을, 한명은 과일과 술을, 나는 그냥 국화꽃을 한 다발 안고 갔다.

두 분은 이천호국원에 영면하고 계신다.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이기에 두 분을 국립묘지에 모실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다. 1기라고 그랬던가?

가서 보니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하지만 이미 가져 간 것을 어쩌랴. 펼쳐놓고 절만 한 다음 음복도 못하고 고스란히 다시 싸서 들고 쫓기듯 내려와야 했다. 허참,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됐는지. 아쉬움에 한참동안 두 분 사진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설 명절이라고 행궁 광장엔 한복을 예쁘게 입은 아이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앙증맞은 설빔차림으로 연을 날린답시고 뛰어다니는 그 모습에 절로 할아버지 미소가 지어진다.

설날 아침엔 흰 눈이 소복하게 화성행궁을 뒤덮었다. 아, 이것이 올해의 상서로운 조짐이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