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집안의 가보로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물이지만 더 많은 학자와 사람들이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아낌없이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선 정조시대의 정치가이자 실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선생의 6대 종부인 김혜정(75)씨는 지난 10월 11일 보물급 유물 135점을 수원시에 기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번암 선생의 유족들이 기증한 유물 중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선생의 영정을 비롯해 정조대왕의 친필 문서 등 당시 정치, 사회, 생활사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앞서 서지학자이면서 독도지킴이로 한 평생을 살았던 사운(史芸) 이종학(李鐘學) 선생의 유족들은 지난 2004년 1월 16일 선생이 소장했던 고서적과 사료ㆍ지도ㆍ사진 등 1만9천836점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또 서예가인 근당(謹堂) 양택동 선생이 조선시대 중기부터 현대까지의 대표 서화가 작품 6천여점을 기증했고, 상주박씨 종중에서도 상원군(商原君) 박유명(朴惟明 1582~1640) 선생의 초상화 2점을 기증했다.
이 처럼 최근 수년간 수원시에 기증된 유물들은 총 2만5천여점에 달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보물급 유물도 있지만 아직 값을 헤아리기 어려운 사료와 서적 등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국내 대표적인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에 이렇게 많은 유물들이 기증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수원시청 소속 학예연구사들이 기증자들을 1년 이상 수시로 찾아가 "소중한 유물을 영구보존하는 것은 기증하는 것이고 수원시가 최고 가치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삼고초려(三顧草廬)'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면 수억원을 받을 수 있는 유물을 아낌없이 시에 기증한 기증자들은 한결같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공유하고 후대에게 잘 보존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기증 이유를 밝혔다.
수원시는 기증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유물들을 전시하고 보존하기 위한 전용 박물관인 '수원역사박물관'을 206억원을 들여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만2천평 대지 위에 짓고 있다.
시청 학예연구사 이달호(52) 박사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선뜻 시에 기증해주신 기증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이 분들이 기증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유물들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소중하게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