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하필이면 세상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산맥의 고원, 오지 마을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GNP와 같은 단순한 척도로써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인간은 영원히 경멸당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돈만을 중시하는 관점에 매몰되면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마침내 자신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나지막하게 그러나 더할 수 없이 간곡하게 전하면서 교육에 대한 불변의 가르침도 제시하고 있다.

라다크 교과서는 인도 교과서를 베낀 것인데 그 인도 교과서도 실은 유럽 교과서를 베낀 것으로 라다크 학생들의 행복과는 관계가 먼, 엉뚱한 내용이라는 걸 지적하고 있다. "소남이란 아이의 교과서에는 런던이나 뉴욕 아이들 침실 그림이 있는데 침대 위에 깔끔하게 접어놓은 손수건들이 보이고 그것들을 어느 서랍에 넣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소남의 여동생 교과서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있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었다는 문제를 풀고 있는데 피사의 사탑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그 각도를 계산하라는 문제였다"

학문이라는 것은, 그 학문에 따른 교육은, 이 세상 누구든 공통적·일률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에게는 불멸의 사상가 존 듀이의 주장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교육은 삶의 과정 그 자체이지, 미래의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학교는 삶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어야 한다!”(듀이 ‘나의 교육 신조’)

코로나 사태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당연히 아이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설날 교육부 장관은 OECD 모든 나라에서 학교는 다른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방역 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 팬데믹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문을 열 수 있었으므로 이젠 어떤 상황에서도 학교의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라면서 학교의 문은 가장 일찍 열고 가장 늦게 닫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왜 그럴까? 왜 가장 일찍 열고 가장 늦게 닫아야 할까? 교문은 학생들이 등교하고 하교하는 그 물리적인 열고 닫음만을 의미하는가? 학교 방역 시설은 어떻게 작동되고 방역 인력은 어떻게 운용되는가? 누가 확인하고 있는가? 우리 교육은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원격교육 시스템·인프라·콘텐츠 이외에 또 어떤 점이 달라지고 있는가? 그 변화도 위기를 기회로 삼은 교육정책이 주효한 것인가? 예상외의 힘을 보여준 선생님들의 적응력으로 가능했던 일인가? 그동안 교육부도 국회도 기초학력 수준 이외에 또 어떤 점을 걱정해 왔는가?

학습뿐만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친구들, 선생님들과의 관계 등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가는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갖게 되는 결손은 참으로 심각하고, 그 부분을 학생들 수준에 맞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조치를 해주고 있는가? 아이들은 지금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초조하고 불안하다. 우울하고 피곤하다. 교문을 나서도 말이 없다. 입을 열 생각이 없다. 사실은 교과 학습보다 더 핵심적인, 교과 학습 이전의 문제인 그 정서에 대해서 3년이 되도록 걱정만 한 건 아닌가?

유독 이 나라에서는 금과옥조인 교과서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마스크 쓴 인물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선생님은 여전히 정답고 아이들은 예전처럼 서로 손을 잡거나 나란히 혹은 마주 앉아 속삭이고 있다. 학교생활을 여러 해 경험한 아이들은 다 이해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 시대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상황에서는 선생님들이 마치 독립된 교육기관처럼 작용하고 있으므로 그 어려운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돕는 초등학교(저·고학년)·중학교·고등학교용 특별교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이 특수 상황을 이해하고 삶의 길을 생각하게 할 그 교재는 교사와 교육학자, 심리학자, 의사, 행정가, 학부모, 학생 등 여러 분야 인사들이 참여하면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