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삭막하다는 느낌일 때 학교를 바라보면 새삼스럽게 아, 저곳이 있지 싶고 아늑한 교실, 가슴 트이는 운동장, 정원, 꽃밭, 놀이터… 추억 어린 곳들이 옛 생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학교는 마지막 남은 마음속 안식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학교도 다 변했다. 우리가 가슴 속에 담고 있는 그 학교는 실제로는 세상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엄청나게 변해서 추억을 그대로 보여줄 만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옛 세대는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지만, 지금은 많아 봐야 스무 남은 명이다. 아이들은 각자 책상 하나씩을 차지한다. 구타는 사라졌다. ‘사랑의 매’니 뭐니 하고 회초리 없이 어떻게 교육을 하겠느냐면서 그걸 존치하려는 교육자들이 있었고 ‘독서벌’ ‘운동벌’ ‘한자·영어 쓰기벌’ 등 ‘대체벌’이라는 기이한 걸 구안해내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학생들의 인격부터 존중해야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엄연한 논리가 설득력을 유지했고 마침내 화장, 머리 염색 같은 것까지도 허용되고 있다.

치맛바람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사전에 나오는지 모르겠고, 외형적 관찰이긴 하지만 차별·편애도 사라졌다. 하기야 “선물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얼핏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구호를 새긴 현수막을 교문에 내거는 삼엄한 분위기여서 커피 쿠폰 하나도 당장 되돌아오는 ‘삭막함’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러다가 변한 것을 나열하다가 말겠다 싶지만, 일일이 인쇄해서 가방에 넣어주던 알림장은 보기 드물게 되었고 무상급식도 실현되었다. 웬만한 준비물은 학교에서 다 마련해주게 되어 학교 주변 문방구점이 모조리 사라지는 대신 카페가 많이 들어섰다.

이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제 선생님들은 거의 풍금을 타지 않는다.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구안하는 모든 것을 각종 교재교구가 다 실현해주기 때문이다. 보여주거나 들려주고 싶은 것들을 즉시 프로젝션 TV에 띄울 수 있다. 그 교재교구는 우리나라 교실이 세계 제일이라는 주장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도시 기준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한 학년 학생이 서너 명인 곳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은 것을 열거하는 것이 낫겠다. 선생님들은 그대로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교직원 구성에 대해 교장·교감, 교사들, 청부 한둘이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비해 지금은 학교에도 다양한 직원들이 있고 그들이 아니면 학교를 운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교실은 아직 남아 있고 운동장, 놀이터도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 공간구조 연구를 보면 그것들의 변화도 이미 실현되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겠지, 짐작하고 싶어도 실제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없진 않다. 객관식 평가 제일주의 사고방식이다. 유치원 때부터 중3, 잘해봐야 고2까지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다가도 고3이 되면 모든 걸 유보하고 ‘5지선다형’ 시험 준비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며 유치원 때부터 이미 그 전쟁은 시작된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세계적인 운동선수, 가수들을 들어 그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했다면 그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일찌감치 적성을 찾도록 하자던 시절이 있었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라고 한 것인데 이후 두고두고 “실력도 없는 ○○○세대”라는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또 대학 입학전형에서 수학능력시험보다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논술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었다가 “98점과 99점은 다르다!”라는 고위직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백가쟁명이던 교육학자들은 일제히 함구하고 말았다.

그건 개별성(개인)을 중시하는 교육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과 같고, 개성·적성·소질·진로 같은 것을 따지지 말고 ‘고르기’ 한 가지로 평가해야 옳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이 엄격한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 입시경쟁은 한 해 한 해 변함없이 가고 있다. 뭘 좀 바꿔보고 싶은 선생님들이 힘을 잃고 있다. 학생 수는 엄청나게 줄어드는데도 그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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