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도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기도를 깊이 하지를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원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할까요?

기도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못하기에 원하면서도 깊은 기도를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 Speaking이 아니라 듣는 것, Listening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하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직전 올리브 과수원으로 가셔서 친히 기도 드릴 적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예감하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전심을 다하여 기도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겪지 아니하시고 존경 받으며 노후를 보내시기를 원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나의 생각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저 하시는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기도의 모습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라고 말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들려주시옵소서"라고 드리는 기도가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인 대화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살아 있는 나와의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가 기도입니다.

그 대화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납니다. 서점에 가면 〈대화의 기적〉이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대화를 통하여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를 자상하게 일러 주는 내용의 책입니다.

기도는 후퇴가 아니라 전진입니다.

기도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 중에 험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골방으로 들어가 울며 하나님의 자비하신 도움을 구하는 것을 기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상처 받고 움츠러들어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 위로 받고 힘을 얻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인생의 싸움터에서 후퇴하지 아니하고 담대함으로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