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정치는 높고 넓고 깊어야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성직자입니다.
정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성직자이긴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고, 안보도 튼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청년들의 실업도 줄일 수 있고 그리고 통일도 할 수 있겠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달을 넘기면서 정치에 대해 한마디 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정치는 넓어야 하고 높아야 하고 깊어야 합니다.
넓다는 것은 포용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포용력이란 자신과 생각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도 능히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도 그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반대한다면 그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하면서 자기의견에 꼭 맞는 사람들끼리만 정치한다는 것은 넓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런 정치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기 마련이고 기껏해야 패거리 정치밖에 안 됩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고 모욕하던 정적(政敵)을 국무장관에 앉혔습니다.
그러자 링컨 주위의 동지들이 링컨에게 항의했습니다.
"대통령 당신은 자존심도 없소? 그렇게도 당신을 모욕하고 반대하던 사람을 정부의 중직에 앉히다니요?"
이에 링컨이 답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중용한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요. 나라를 위해서요. 나는 나라에 유익하다면 누구든 중용하겠소."
이런 마음이 정치인의 넓은 마음입니다.
중국의 등소평은 모택동이 일으킨 문화혁명으로 모진 고생을 겪었습니다.
자존심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등소평에게 모택동은 대를 잇는 원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등소평은 정권을 잡은 후 모택동을 국부 격으로 높이고 모택동 지우기운동을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등소평이 측근들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모택동 선배가 역사에 끼친 공과 과가 있소. 나는 나라와 후손들을 위하여 모택동의 공만 높이기로 하였소."
이런 마음이 정치의 넓이입니다.
지금은 어려운 시대입니다.
우리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어렵습니다.
세계가 어려운 중에 우리의 어려움이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핵을 가지게 되었고, 남한에서는 그에 대해 뚜렷한 대안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인구는 많은데 자원이 없는 나라입니다.
오로지 국민들의 근면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여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수출이 지난해부터 달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청년실업자들은 날로 늘어나고 서민경제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바닥 인심이 흉흉한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시대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정치적 지도력입니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가나 정당이 앞장서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워 나갈 능력과 도덕성과 추진력을 지닌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바람직한 정치력에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이들 3가지를 갖춘 지도력이 등장하여 이 나라가 위기를 극복하고 번영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나가야 합니다.
바로 넓은 정치, 높은 정치, 깊은 정치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로마제국 연구서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과 미국의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훈련시킬 때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읽게 한다고 합니다.
이 책 1권 서두에 이탈리아 반도에 터를 잡은 작은 나라 로마가 천년제국을 이룬 이유를 2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포용력과 관용입니다. 로마인들은 포용력과 관용정신으로 당대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습니다. 포용력이 바로 넓은 마음이고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넓어야 세계를 품을 수 있고 너그러워야 사람들을 포섭하고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정치가들에게는 포용력과 관용의 정신이 없습니다.
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가들을 걱정하게 합니다.
정치가의 역할이 국민들을 걱정하여 주는 일인데 이 나라는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가들을 염려하게 하니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