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행법에선 임종 과정에 들어선 환자가 생명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이다.

그러나 임종 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라도 회복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없을 때는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웰다잉(well-dying)'을 원하는 모두에게 '존엄사'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허용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 법안이 지난달 국내에서 첫 발의됐다.

말기암 환자 등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 스스로 삶을 끝내는 존엄한 죽음을 결정할 권한을 주어야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조력 존엄사’는 의료진으로부터 약물 처방을 안내받은 후 환자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투약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현행법상 ‘조력 존엄사’와 ‘안락사’ 등 두 가지 방법은 모두 명백한 불법 행위다.

국내에서는 환자가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을 원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환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의 착용을 중단하는 형식의 존엄사만 가능하다.

그러자 다시 여론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의료계는 곧바로 최근 존엄사 및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다양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서 조력존엄사의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놨다.

종교계도 ‘악한 법률’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정돼야 하는 명백한 목적이 있는데 조력존엄사는 이같은 기본 원칙을 역행한다는 것이다

반면 환자가족 등 국민들은 조력 존엄사법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지난 13일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력 존엄사법 입법화에 대한 찬성 의견은 82%, 반대 의견은 18%로 집계돼서다.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4일 진행됐다.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이 20%, '찬성한다'는 의견이 61%에 달했다.

'반대한다'는 16%, '매우 반대한다'는 3%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에서 찬성 비율이 86%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이 25%로 가장 많았다.

이어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순으로 조사됐다.

자기 결정권 보장은 18~29세에서 44%,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는 60세 이상에서 29%, 가족 고통과 부담은 40대에서 26%로 각각 높게 나타났다.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죽음을 권리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주장이 충돌하는 형국이다.

앞서 연명의료결정법도 법 제정 과정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과 사회적 갈등을 거친 바 있다.

때문에 ‘조력 존엄사’ 문제의 섣부른 결론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망자의 4명 중 3명(약 75%)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것이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제도로 ‘호스피스제도’나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있지만 여론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기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국내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은 암 환자 기준 23%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영국은 호스피스 병동 이용률이 무려 95%에 달한다.

고통 없는 생애 말기를 보장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유의미한 통계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사람은 언젠가 죽음과 만나게 된다.

조력 존엄사법 입법을 계기로 정부의 '국민 삶 마지막 돌봄정책' 즉, 웰다잉(Well-Dying)정책이 어디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지 다시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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