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성이라면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실현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능성은 결코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종래의 환경과 여건이 이런 가능성을 가로막았던 것이라면 그런 환경과 여건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모든 창조성의 출발점이 됩니다.

인간이란, 본래 일해야 하는 목적과 그 일의 가치를 알게 되면 '일하고 싶어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못된 짓, 그릇된 길로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상관이나 부모나 다른 권위에 의하여 명령 받아 하는 일이 아닙니다. 보다 인간적인, 그리고 자주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하는 활동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아무리 땀 흘리고 고된 일 일지라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심신이 건강하고 건전하다면 이런 활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이런 활동성이 억압되어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일'에는 이런 활동성 외에 또 하나의 요소가 있습니다.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하는 성향을 '창조성'이라 합니다. 만일 상관이나 보모나 다른 권위자들에 의하여 의무적으로 하여야 하는 일이라면 창조성이 발휘되지 못합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픈 본성이 구속되어지면서 창조성이 가로막히게 되고 창조성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케 됩니다.

인간은 주어진 일을 수행함에 자유재량으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 재량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책임감은 다릅니다. 책임감이 높아지면 일에 대한 의욕 또한 높아집니다.

'일'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든 사회에 공헌하고픈 마음입니다.

바로 사회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창조성' '활동성' '사회성'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위대한 인물들은 무슨 일이든 쉽게 해낸다고들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환상입니다. 영감( Inspiration)이란 말을 흔히 듣습니다. 영감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든 노력함이 없이도 이룰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제는 그와 반대입니다.

단편 소설의 명수였던 발자크가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하여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나는 마치 낙반 사고로 갇힌 광부가 목숨을 걸고 괭이를 휘두르듯이 창작 활동을 하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 역시 자신의 작품 활동을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초조한데다, 하루에 몇 백 번씩이나 격심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진짜 노동자처럼 괴로운 작업을 계속하였다. 소매를 걷어 붙이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이나, 눈이 내리거나 우레가 치거나 마치 망치를 내려치는 직공처럼 일하였다"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함이 없이 좋은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실천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바울도, 베드로도, 야고보도 말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제임스 데니가 말하였습니다. "하늘나라는 선의의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절망적인 사람들의 것이다. 절망에서 노력하여 일어선 사람들의 것이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타락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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