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루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공연.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사진=김우영 필자)
신풍루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공연.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사진=김우영 필자)

‘수원 문화재 야행(夜行)’이 3년 만에 대면 행사로 열렸다.

하루 전날부터 설렜다. 오는 20일 오후 6시 수원양조협동조합 행궁연가에서 열릴 예정인 수원시인협회 한여름 밤의 시낭송회 장소에서 사전 모임을 한 뒤 일행과 헤어져 행사가 열릴 행궁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아봤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비가 오락가락한 터여서 행사가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비는 그쳤다.

행궁광장에는 부스가 들어서고 행사 시설물과 각종 영상, 조명 설치가 한창이었다.

행사 첫날인 12일 오후 4시 수원전통문화 예절교육관에서 열린 ‘기후변화 대응과 문화재지킴이 활동의 확장성’ 학술세미나를 시작으로 수원문화재 야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세미나는 기후위기에 위협받는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재 보호에 민간부문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행사였다.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와 수원지기학교가 주관한 이 세미나엔 (사)화성연구회 회원 등 전국의 문화재지킴이 관련 단체 회원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화성연구회 이사장이자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수석부회장인 최호운 박사와 최종호 한국전통문화재학교 문화재 관리학과 교수, 이해준 전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장, 최재헌 건국대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 등이 주제발표를 했고 오덕만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장이 좌장을 맡아 토론이 벌어졌다.

그날 밤 야행은 세미나의 뒤풀이가 길어져 함께하지 못했고 둘째 날인 13일 본격적인 밤나들이에 나섰다.

행궁광장에 설치된 ‘기억의 찰나 226’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 (사진=김우영 필자)
행궁광장에 설치된 ‘기억의 찰나 226’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 (사진=김우영 필자)

행궁광장에 설치된 ‘기억의 찰나 226’ 전시를 비롯해 행궁동과 곳곳에서 벌어진 전시와 크고 작은 공연들을 보느라 발걸음이 바빴다. 하지만 몸이 하나뿐이라 일부만 볼 수 있었다.

행궁 신풍루 앞에서 열린 무예24기 특별공연과 전우치 군무, 화령전의 무형문화재 전통공연, 남문로데오 청소년공연장의 인디밴드 공연, 천주교 북수동성당의 풍류 야행행 스윙윙 댄스파티, 종로교회·공방거리·행궁동주민센터 앞의 버스킹 공연 등...

아쉬웠던 것은 행궁 안에서 열린 행사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표소의 긴 줄을 보는 순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해부터 이른바 ‘지공거사(만 65세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연령)’가 되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음에도.

화성행궁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시민과 관광객들. (사진=김우영 필자)
화성행궁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시민과 관광객들. (사진=김우영 필자)

사실 난 아무리 맛있는 음식점이라고 해도 줄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간 적이 없다. 몇 해 전 형제들과 제주도의 유명 고기국수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30미터정도 줄지어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옆집으로 들어갔다.

텅 빈 것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손님이 없는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형제들은 “내가 만들어 먹어도 이것보다는 낫다”며 젓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그러나 수원문화재 야행은 그렇지 않았다. 행궁 밖의 공연들도 충실했다. 관객들도 뜨겁게 호응했다.

그러고 보니 세 시간 동안 발품을 많이도 팔았다. 땀을 꽤나 흘렸다. 덕분에 그날은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2020~21년 ‘수원 문화재 야행’은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 비대면 형태 관람형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올해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대면 행사를 마련, 큰 호응을 받았다.

수원문화재단은 “올해는 ‘기억’을 주제로 수원과 수원화성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우리 이웃의 모습과 역사를 담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정조대왕의 수원화성 축조를 시작으로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수원의 역사와 우리 이웃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훼손된 환경·문화유산을 보호할 방안을 고민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야경(夜景)·야로(夜路)·야사(夜史)·야화(夜畵)·야설(夜設)·야시(夜市)·야식(夜食)·야숙(夜宿) 등 8야(夜)를 소주제로 65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성공적이다.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행궁동 거리와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고 하나라도 더 구경하겠다는 듯 행사안내 소책자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녔다.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는 행사였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야시’다. 지역 독립서점, 작가들이 함께하는 ‘야간 책장터’, ‘행궁동작가단 마켓’, 수원의 지역 문화콘텐츠를 판매하는 ‘수문장 마켓’, 지역주민 중심으로 운영되는 ‘버들마켓’ 등으로 구성되는 장시(場市)다. 그러나 이곳저곳에 분산된 데다가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어 각광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행궁 광장이나 미술관 옆 잔디마당 등 한 곳으로 몰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던가. 통닭거리나 순대타운처럼 가게도 한곳에 몰려 있어야 소문이 나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법이니.

수원시청과 수원문화재단 직원들, 고생 많았다. 그리고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단체와 문화예술인들, 자원봉사자들도 고맙다.

이제 가을 수원화성문화제를 기다린다. 축제가 있는 도시 수원에 사는 것이 이처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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