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진행된 화성낙성연 모습.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최초로 재현됐다. (사진=수원시포토뱅크)
2010년 진행된 화성낙성연 모습.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최초로 재현됐다. (사진=수원시포토뱅크)

오는 9월 16일 오후 6시 30분에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리는 전국문화재지킴이날 행사에서 ‘화성낙성연’(華城落成宴) 행사가 재현된다.

화성낙성연이란 어떤 행사인가? 지금으로부터 226년 전인 1796년(정조20) 10월 16일 정조대왕의 특별지시로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잔치이다.

화성성신사 위패. 2009년 화성성신사 중건 당시 화성성신신위(華城城神神位) 위패를봉안한 것을 화성연구회 한정규 회원이 한글정리의궤에 화성성신지주(華城城神之主)임을 밝혀 2018년 필자가 위패를 새로이 제작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화성성신사 위패. 2009년 화성성신사 중건 당시 화성성신신위(華城城神神位) 위패를봉안한 것을 화성연구회 한정규 회원이 한글정리의궤에 화성성신지주(華城城神之主)임을 밝혀 2018년 필자가 위패를 새로이 제작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화성은 1794년 1월 7일 돌 뜨는 공사와 25일에는 성터 닦는 공사로 시작해 1796년 9월 10일 마무리됐다. 9월 16일에는 본부의 기술자들에게 상을 주었고 19일에는 성신사에 ‘화성성신지주(華城城神之主)’위패를 봉안했다. 9월 28일에는 2,3등 원역(員役)에게 상을 내렸다. 10월 9일에는 3등 패장과 잡역패장에게 상을 내리고 10월 16일에는 낙성연을 열었다.

1796년(정조20) 8월 1일자 일성록 기사에 의하면, "재전(齋殿, 경모궁재실)에서 호조판서 이시수와 화성유수 조심태를 소견(召見,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름)했다. 내가 조심태에게 묻기를, ‘성역(城役)은 언제쯤 마칠 수 있겠는가? 하니 조심태가 아뢰기를, 체성(體城)은 이달 10일전에 마칠 수 있고, 여장(女墻)은 9월중으로 공역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완성한 다음에 낙성연을 해야 하겠지만 호궤(犒饋, 음식을 베풀어 군사를 위로함)하는 일을 낙성할 때까지 기다리면 먼 지역의 공장(工匠, 장인)들이 오래 대기해야 할 것이니 이점을 생가해 주지 않을 수 없다. 체성의 공역을 마치고 나면 다시 내게 물어서 즉시 거행하는 것이 좋겠다. …"고 정조가 지시했다.

10월 16일 낙성연을 낙남헌에서 열었다. "감동당상이 주관해 날을 가려 성역에 참여한 이들은 물론이고 비록 한번 오고가며 한 가지 일에 관계했어도 모두 와서 잔치에 참석하게 하니 먼 땅에 벼슬 나간 이와 질병이 있는 이 외에는 원역(員役), 조예(皁隸)까지 한사람도 뒤처져 오지 않았다"고 정리의궤 10월 16일자에 적고 있다. 

정리의궤 화성낙성연도. 2016년 7월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한글정리의궤 성역도가 발견됐다. 성역도는 화성성역의궤 권수에 나오는 시설물도에 채식한 그림이다. (자료=화성박물관)
정리의궤 화성낙성연도. 2016년 7월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한글정리의궤 성역도가 발견됐다. 성역도는 화성성역의궤 권수에 나오는 시설물도에 채식한 그림이다. (자료=화성박물관)

"잔치 날에 앞서 낙남헌 앞에 30칸의 보계(補階, 잔치나 큰 모임이 있을 때 마루를 넓게 쓰려고 대청앞에 잇대서 임시 베푼 자리)를 설치하고 처마의 차일은 높기가 구름 같으며 뜰에 배설한 것은 강무당 앞까지 백 여보를 통하였다. 별주는 음식을 도맡으며 교방(敎坊, 장악원)은 풍류를 익혀 산해진미와 연가조무(宴歌朝儛)를 갖추지 않음이 없었다.

보계에는 총리대신이 한 가운데 주된 자리이고 감동당랑은 서쪽 벽에서 동쪽을 향하되 겹줄로 자리를 다르게 하며 여러 빈객들의 자리는 동쪽 벽에서 서쪽을 향한 자리였다. 감동을 맡은 여러 관원은 보계의 동서로 나누어 앉고 장교, 역원 등은 계단 아래 동서로 나누어 자리를 잡았고, 공장과 역부는 앞으로 당을 향하여 앉히니 이름 없이 참석하는 손님은 별도로 후원에 자리를 마련하고 막부의 모든 사람은 좌우로 반열을 차렸다"고 적고 있다.

화성낙성연은 2010년 정조대왕 탄신 258주기를 기념해 낙남헌에서 최초로 시연됐다. 이후 화성문화제 때 해마다 재현됐다. 낙성연은 궁중연희와 민간연희를 함께 선보이고 있어 상하동락(上下同樂)의 애민정신을 구현했다는 특징이 있다. 

보계 위에서는 축성에 참여한 관료들과 경기도내 수령들을 위한 궁중연희인 헌선도, 연화대무, 금척무, 무고, 포구락, 검무가 펼쳐졌다. 보계 아래에서는 축성에 참여한 기술자와 민간인들을 위한 민간연희인 사자춤, 호랑이춤, 산붕(山棚, 산모양의 누각)위에서는 만석승무, 취발이가 연행됐다. 화성낙성연은 수원화성의 정체성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행사라 할 수 있다. 

화성연구회는 2017년부터 수원문화재단으로부터 위탁받아 화성낙성연을 재현하게 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창궐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하게 됨에 따라 4부로 진행하게 됐다. 1부는 낙성연을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다. 2부는 화성관련 전문가들의 토크콘서트가 진행했다. 3부는 낙성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연극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4부는 화성낙성연의 근원을 찾는 낙성연 자료집을 발간하는 사업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2021년도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인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금년 2022년도는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됨에 따라 전국문화재지킴이대회에서 축하공연으로 진행하게 됐다. 금년 낙성연 시연 행사는 전국문화재지킴이 활동으로 노고가 많은 문화재지킴이들의 위로연으로 진행하게 된다.

2022년 수원화성낙성연 포스터. (자료=화성연구회)
2022년 수원화성낙성연 포스터. (자료=화성연구회)

첫 번째는 덧배기춤의 공연으로 시작된다. 덧배기란 경상도식 자진모리장단의 이름인데, 이 지역의 남자들이 마당에서 추는 활달한 춤을 덧배기 춤이라고 한다. 덧배기는 덧난 것을 베어버리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두 번째는 빗내북춤이 공연된다. 영남지방의 빗내농악으로 군사굿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농악이다. 빗내북춤은 두 손에 북채를 들고 빠른 텀포의 역동적인 동작과 즉흥적인 춤사위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신명이 내재된 군무는 마치 군사가 훈련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사자놀이 공연으로 이어진다. 사자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사자로 꾸민 사람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잡귀를 쫓고 복을 빌어주는 민속이다. 나무나 대광주리에 종이를 발라 꾸민 사자 머리와 꼬리에 두 사람이 들어가며, 풍물패를 앞세워 마을을 돌아다닌다.

네 번째는 대기놀이(용기놀이) 공연이다. 전라북도를 필두로 활발하게 행해진 민속놀이다. 대기놀이는 지역 마을의 위세를 과시하고 한해의 액을 떨쳐버리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기를 날리는 시두들의 행위가 역동적인 민속놀이이다. 

낙성연의 총연출은 김성우 감독이 맡는다. 덧배기 춤은 허창열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가 공연한다. 빗내 북춤은 타악집단 노리광대가 맡아 공연한다. 대기놀이는 연희단광대 김재현, 곽병철이 맡고, 사자놀이는 류병훈, 박민표가 공연한다.

화성낙성연은 수원화성의 준공행사에 총리대신 채제공이 직접 참여, 성역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과 고을 주민들을 위로한 잔치다. 정조의 상하동락의 위민정신을 간직한 무형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 화성연구회는 철저한 고증과 연출을 통해 화성낙성연을 수원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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