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명절 분위기가 살아 난 올해 추석이야기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추석날은 우리 가족들과 딸·사위까지 모두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두 번째 방문한 조원동 고깃집의 음식맛은 여전했다.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식사 후 아들 둘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아내는 다음날 아침 일찍 강화도로 자전거를 타러간다며 먼저 갔다.

딸 둘과 사위가 나를 잡는다. “아빠, 생맥주 한잔만 더하고 가자” “그러시죠, 장인어른”

장안문 근처 생맥주집 밖에 자리 잡고 앉아 몇 잔 마셨다. 내가 저희들을 혼냈을 때 서운했다는 이야기, 형제들 간 티격태격한 이야기, 돌아가신 할머니·할아버지·외할머니에 대한 추억 등 대화는 끝이 없었다.

기어이 노래방까지 끌려 들어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셋째 딸이 찰싹 붙어서 “아빠, 김창완하고 아이유가 부른 ‘너의 의미’ 딱 한곡만 하고 가. 나 아빠랑 그 노래 불러보고 싶었단 말야.”

이러니 안갈 수 없다. 나도 사실은 그 노래를 딸과 함께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창완 혼자 불러도 괜찮은 곡이었는데 아이유가 함께 하니 중독성이 더 강해졌다. 동네 아우에게 이 노래 들어보라고 했더니 곧바로 마약증상이 나타났다. 잠이 들기 전에도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는 것이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나에겐 커다란 의미/너의 그 작은 눈빛도/쓸쓸한 뒷모습도...‘

이 노래를 들은 후 아이유의 팬이 됐다. 아이유가 등장하는 광고만 봐도 요즘말로 입꼬리가 승천한다.

어쨌거나 딸과는 처음 불러보는 노래인데도 흡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정말 내가 김창완이고 딸이 아이유인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맨 끝의 “도대체 넌 나한테 누구냐?”라는 대사도 완벽하게 해냈다. 그런데 어째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일까? 딸을 꼭 끌어안아줬다. 속으로 ‘사랑한다. 내 딸아’를 계속 되뇌었다.

한곡으론 정이 없다. 옜다, 서비스로 한 곡 더. 박상규의 ‘조약돌’을 부르곤 사위와 노래방을 나섰다. 사위는 몇 시간 후인 새벽 1시에 주꾸미 낚시하러 가야 한단다. 많이 잡거든 라면에 넣어 먹게 10마리만 달라고 했다.

추석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다음날 오전엔 숙취를 무릅쓰고 밀린 원고를 썼다. 오후가 되자 몇 군데서 전화가 온다. 한잔 하자는 거다. 음주 다음날 하루 정도는 무조건 쉰다는 내 ‘소신’을 아는지라 순순히 물러난다.

저녁 무렵 산책에 나섰다.

통닭거리에 몰려든 사람들. (사진=김우영 필자)
통닭거리에 몰려든 사람들. (사진=김우영 필자)

수원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통닭거리에 들렀다. 흡사 추석 전날 못골시장통처럼 사람들이 붐빈다. 통닭집들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고등학교 후배가 하는 통닭집을 들여다보니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와 형제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돈은 후배가 버는데 왜 내 배가 부른 거냐? 아무튼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내 배까지 부르다. 나이 들면서 생긴 변화다.

성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른바 ‘행리단길’, ‘행궁둥이’라고 불리는 신풍동을 지났다. 거리마다 가게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카페나 음식점 모습을 보니 추석이라는 게 실감났다.

장안문에서 선물처럼 만난 노을. (사진=김우영 필자)
장안문에서 선물처럼 만난 노을. (사진=김우영 필자)

해가 지려는 시간, 성벽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나도 따라 걷는데 “우와, 저 노을 좀 봐!”하는 탄성이 들린다. ‘날씨도 흐린데 무슨?’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을이 서녘을 장엄하게 물들이고 있다. 뜻밖의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화홍문에서 성벽을 내려와 다시 신풍동 행리단길을 거쳐 행궁으로 돌아왔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화성행궁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행궁광장 중간까지 늘어서 있다.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 홍보부장을 맡아 복원에 일조를 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던 터라 남들보다 행궁에 관심이 많았다. 적당히 술에 취해 지나갈 때는 합장을 하고 꾸벅 인사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은 처음 본다.

화성행궁 입장객들의 줄이 화성행궁 광장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사진=김우영 필자)
화성행궁 입장객들의 줄이 화성행궁 광장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사진=김우영 필자)

한참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떠 올렸다. 화성행궁 복원이라는 큰 역사를 이뤄낸 심재덕 시장님. 조금만 더 오래 사셔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보다 흐뭇해 하셨을 것을.

이번 추석은 여러모로 뜻 깊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끼리 만나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