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155)] '에스페란토'를 아시나요
K리그 축구팀 FC 안양의 엠블럼 하단에 있는 시민(Civitano), 낙원(Paradizo), 행복(Feliĉo)이라는 세 단어가 '에스페란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 3대 천재로 불렸던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호 벽초(碧初)가 '최초의 청록인', 즉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만 안다.
벽초가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배운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듣기에도 생소한 에스페란토(Esperanto)는 과연 어떤 언어일까?
'희망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인류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용이하게 하려 만든 언어다.
특정 강대국 언어가 아니며 또 어느 나라 말도 아닌 중립적이며 배우기 쉬운 언어를 사용해 인류가 평화롭게 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다시말해 자유·평등·중립을 기치로 만든 평화의 언어인 셈이다. 자멘호프 박사가 태어난 폴란드 북동부 지방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폴란드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독일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이 살았다.
그리고 언어가 달라 서로 반목과 갈등도 심했다. 그는 원인을 언어 소통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는 곧 자신이 가진 모든 언어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누구나 배우기 쉽고 소통이 용이한 언어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에스페란토다.
현재 122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국제적 사용이 활발하다.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국내에서는 1만여 명을 헤아린다. 대표적 사용 인물은 미국의 투자가 조지 소로스다.
우리나라에 에스페란토가 보급된 것은 1920년 김억이 YMCA에서 공개 강습회를 개최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설됐다.
당시 유명한 동인지에는 거의 대부분 에스페란토에 대한 글이 실리는 등 인기가 있었다.
에스페란토에 관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1910년 2월 15일자 황성신문에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세계 공통어로 “코레아 후라(만세)”를 세 번 외쳤다’는 기사 내용이 그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외친 “코레아 후라”가 바로 에스페란토다. 암울한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소통언어가 에스페란토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스페란토는 알파벳을 소리 나는 대로 읽고, 문법도 16개로 단순해 외국어를 배우는 절반의 노력만으로도 익힐 수 있다고 해서 지금도 관심 갖는 이들이 많다.
동호인들이 모여 만든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창립 100주년을 넘겼을 정도다. 디지털시대인 지금까지 꿋꿋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영어가 만국 공통어가 된 세상이지만 세계인들의 또 다른 소통을 위해 에스페란토가 진화중이라는 소식이다.
인류가 같은 언어를 쓰면 종족 간의 편견·분쟁·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던 자멘호프의 의지가 디지털 언어로 재탄생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