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무서운 스승이 되라

'우리아이 바람직한 교육대안'

    욕심이 있는 아이는 뭐가돼도 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욕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습 저하의 근본원인은 무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욕심이 없고 의욕도 없는데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욕망이 없다. 단지 주위의 욕망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의욕이 없어도 무기력을 탈출하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의지다. 의지는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게 하는 에너지로 인간에게만 허락된 고귀한 능력이다.

의욕과 의지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이끄는 연료이자, 의존적인 학습패턴을 벗어날 수 있는 정신역량에 속한다. 이것은 어디서 돈을 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 위력은 원자력보다 강하고, 매장량 또한 무한하다. 그럼 어떻게 이 숨겨진 연료를 꺼낼 것인가?  
  
배우려는 욕심보다 가르치려는 욕심을 키워라

아이들은 왜 학습의욕을 느끼지 못하는가? 한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앉아서 받아들이기만 하는 생활의 연속에서 의욕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과는 달리 선생은 입장이 다르다. 수업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신나게 지식을 쏟아낸다. 이것이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의 차이다.

차이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선생은 가르치기 위해서 배운다. 쏟아낼 곳이 있기 때문에 공부하고, 실력 없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공부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의자에 앉아 배울 때 받는 아이들의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출력을 위한 입력은 온전히 자기지식으로 남는다.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도 하고, 반성도 이끌어낸다. 그래서 선생은 항상 아이들의 의욕보다 강하고, 아이들의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것이 바로 자기주도적인 학습방식이다.

아이들이 가르치도록 기회를 주자. 집에선 부모가 잠시 아이에게서 배우는 자로 내려가주면 된다. 쏟아낼 기회를 마련해 줄수록 아이의 의욕은 그만큼 높아진다. 오늘 배운 과목을 들어주기만 해도, 학원에서 읽은 책의 내용을 들어주기만 해도 아이의 기(氣)는 살아난다. 설명이 미흡한 부분은 질문과 토의로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발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이 때 부모는 절대 심사관이나 평가자가 되서는 안 된다.

이러한 ‘피드백(Feedback)’ 활동은 자기주도적인 학습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에 교육원에서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논술수업과 토론수업에서 강사는 진행자 또는 가이드로 그 역할이 바뀐다.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주고, 의견을 취합할 뿐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지 않는다.
민사고의 모든 수업은 토론과 발표로 진행된다. 물론 이 아이들도 처음엔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중은 다르다. 스스로 크도록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의 눈치를 살펴라

젊은 시절의 일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다른 고시생들과 공부습관이 달랐다. 어떨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하는가 하면 어떨 때는 바둑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런 불규칙한 공부방식을 내심 못마땅해 하던 나였지만 어느 날 그가 일주일에 90시간을 자신의 공부할당량으로 꼬박 채우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의 엉뚱한 행동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90시간을 채우기가 빠듯하다고 판단되면 그 주간은 모든 유혹을 끊고 남은 시간을 과업달성에 투입한다. 반면에 달성에 여유 있는 주간은 미련 없이 책을 덮는다. 그 결과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의 눈치를 보며 생활을 한다. 자신의 눈치는 전혀 살피지 않는다. 엄격한 환경에 관대한 자신이 서로 만나면 의지는 발휘될 수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관대한 주위 환경과 엄격한 자신의 궁합으로 탄생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문의 1688-8214

기고/ 최은희 원장 (사)대한논리속독학회 영통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