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가슴찡한 예술혼… 꼭 끌어안고 싶습니다”

나혜석 테마 두번째 창작공연 올리는 채명신 씨경기도립 무용단 수석 무용수서 2004년 홀로서기 시작‘꺼지지 않는 불꽃’ 기획∼무용수까지 도맡아 무대 준비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행려병자로 쓸쓸하게 죽어간 나혜석, 정신이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에 매달렸던 그녀에게서 가슴 찡한 예술혼을 느꼈습니다.”

7월 10일 늦은 7시 30분, 나혜석을 테마로 벌써 두 번째 창작공연을 올리는 젊은 춤꾼 채명신. 훤칠한 키에 단단한 몸, 큼지막한 이목구비는 서구적인 외모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전통무용의 기본을 갖춘 명실상부한 한국무용의 희망이자 기둥이다.

코앞에 닥친 공연 준비로 막바지 구술 땀은 일상이 된지 여러 날.
나혜석의 본남편으로 직접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 안무에 음악, 무대셋팅, 의상 등 모든 기획을 도맡고 있는 채씨.

한여름이 시작된 뜨거운 여름날, 공연이 열리는 경기도문화의 전당 대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그는 조금 지쳐 있을 법도 하건만 강렬한 눈빛만큼은 한 낮의 태양만큼 뜨겁다.

“경기도립 무용단 수석 무용수로 있으면서 이대로 안주해 버릴까 두려웠다”는 그는 ‘처음 다짐했던 춤꾼으로의 열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아 2004년 과감하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늘 ‘내가 왜 춤을 추는가’를 스스로 묻던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춤 세계를 고민하던 그즈음, 우연히 나혜석 심포지움에서 그녀의 삶과 대면했다. 묘한 흥분을 남긴 채 잊혀 질 무렵, 지인들과 맥주한잔 기울이며 자주 찾던 그 널직한 광장이 ‘나혜석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이 여자가 이렇게 유명한가?’하며 갸우뚱 했더란다. 그리곤 왠지 모를 이끌림으로 그녀에 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로, 세계일주를 했던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선구적 여성운동가로 다양한 삶의 굽이굽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누나같고, 동생같고 때론 애인같고 아내같은’ 그녀 때문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서슬 퍼런 봉건사회에서 ‘여자도 인간이외다’를 외치며, 그림을 그리고, 남자들과 교류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해될 리 없던 시절이었다.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유학까지 다녀오고, 변호사와 결혼까지 한 그녀가 행려병자로 쓸쓸히 죽어갈 때 그녀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흰 종이와 붓.

정신이 남아있는 한 그림을 그렸던 그녀의 뜨거운 영혼이 젊은 무용수의 가슴에 불씨를 당긴 걸까? 그렇게 채씨는 ‘나혜석’을 주제로 선보이는 두 번째 창작공연에 혼신의 힘을 바치고 있었다.

인간 나혜석의 삶과 고뇌가 심정으로 녹아들면서, ‘그녀의 고독함을 꼭 끌어안고 목 놓아 울고 싶었다’는 채씨. ‘2007 채명신의 춤- 꺼지지 않는 불꽃’은 예술가로, 선구자로 열정적인 삶을 살아낸 나혜석을 오늘 날 우리 앞에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