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전에 듣기부터 연습하라

‘우리아이 바람직한 교육대안’

▲ 최은희 원장
‘사오정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오정’은 동문서답을 통한 유머의 대가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존재한다면 그냥 웃어만 넘길까? 아마 답답해 미칠 것이다.

사오정의 문제는 단 하나, 듣기능력이 제로다. 듣기가 안 되니 학습장애는 당연할 테고, 구술이나 심층면접은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필요한 정보를 듣기를 통해 쌓아왔다. 그리고 한창 지식을 습득해야 할 나이인 아이들은 대부분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고 있고, 이러한 교육방법은 ‘듣기’라는 통로를 통해 정보를 입력하고 저장하게 돼 있다.

그만큼 학습뿐만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언어영역이기 때문에 사회가 듣기평가를 따로 실시하는 것이다. 글은 모르면 언제든지 되돌아가서 읽으면 되지만 말은 내뱉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실상 ‘듣기’능력은 주입으로 크는 아이들의 성적을 크게 좌우하게 만든다. 

● 항상 메모하며 듣고, 말의 요지를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부터

토론을 시켜보면 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여기서 ‘말을 잘 한다’는 의미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들은 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피드백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점을 제대로 파악한 아이가 답변도 정확하다. 그래서 메모는 필수다.

귀는 상대방을 향해 있으면서 손은 부지런히 요점을 찾아 메모해야 한다. 이런 감각이 발달하면 나중엔 적지 않아도 즉석으로 요지를 파악하여 바로 저장할 수 있다.

듣기의 달인을 꼽으라면 단연 동시통역사들이다. 그들은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꼭 이들처럼 되라는 것은 아니다.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적어도 매일 귀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는 스스로 요약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업시간에 펜 한번 들지 않고 구경만 하는 아이는 천재가 아닌 이상 백번 천번 들어도 내용이 여전히 새롭다. 

● 듣기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리더십과 문제해결을 키우는 열쇠

부모들은 자녀가 남 앞에서 말을 잘하길 기대한다. 특히 내성적인 자녀를 둔 부모는 심층면접을 강화한 입시제도 때문에 손해 보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구술시험은 말 잘하는 아이를 뽑는 시험이 아니다. 오히려 장황하게 말을 보태면 감점대상이다. 질문요지를 분명하게 파악했으면 만족이고, 논리로 간결하게 자기 견해를 밝히면 성공이다. 문제는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했느냐?’에 달려있다.

또한 토론은 일방적인 설교와 다르다.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교환하면서 공동의 선을 도출해내는 민주적인 논의과정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수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토론에 서툴다. 말장난에 그치든지,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다. 물론 토론문화에 낯설고,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교육의 결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듣지 않는데 있다. 상대가 발표하면 딴 짓 하다가 자기가 준비해온 것만 뱉어버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습은 TV속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들을 귀가 없는 것은 개인의 불행이자 사회적인 문제다. ‘듣기’ 없이 자란 아이들은 지금의 누구들처럼 편견과 독선에 빠져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좀처럼 타협을 할 줄 모르게 된다. 한마디로 입장의 차이만 보일 뿐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문제해결은 길러질 수 없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방문 걸어 잠그고 자신의 관점에만 몰입해 날을 세우는 교육보다 다양한 관점을 접해보게 하고, 그 중 자신의 세계와 맞는 것을 선택하면서 천천히 논리를 세워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말한 내용에 동의나 반대의견을 내놓는다든지, 그 뒷이야기를 꾸민다든지 하는 활동은 ‘듣기’를 통한 ‘말하기’로 연결이 가능하고, 두서가 없더라도 진행자 없이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방법은 화제를 스스로 바꾸며 진행한다는 측면에서 리더십과 문제해결력을 저절로 키울 수 있다.

교육원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토론방식은 입론에 대한 반론으로 반론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규칙상 듣지 않으면 말하지도 못하게끔 돼있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허접한 입론이라도 토론진행요약지에 메모하는 모습이 이젠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아이들의 ‘듣기’능력 향상을 위해 미디어듣기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 평가는 인터넷 학습을 비롯해 귀를 통해 접하는 모든 정보를 스스로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미디어를 사고하는데 효과적이다.

일방적인 시대는 지났다. 웅변학원이 토론학원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듣고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아이들이 듣는 능력을 길러서 이전 사회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의 1688-8214

기고/ 최은희 원장 (사)대한논리속독학회 영통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