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의 원인은 아이에게 있었다. 나름대로 완벽한 논리로 자기주장을 했다고 생각한 아이는 상대방의 집요한 공격에 순간 당황했고,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항상 정(正)으로만 본 것이 문제였다.
그땐 무척 혼란스러웠겠지만 아이는 그때부터 반(反)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는 점은 분명 그 아이에게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주입된 것들을 모두 정(正)으로 저장한다.
그것은 세상의 정답이고, 그에 반하는 것은 모두 오답으로 처리한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정(正)을 만난다. 그때부터 가치들은 충돌하기 시작한다.
쓰라린 정신의 공황을 경험해 가면서 비로소 합(合)이라는 새로운 정(正)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 뿐 아니라 사회와 인류의 역사과정에 적용되었다. 아이들은 토론을 통해 정·반·합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을 이미 만나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인 근거로 자신의 정(正)을 제시하라
정(正)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이다. 아이들은 입론을 작성해 밝힘으로써 논제에 대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토론은 가치관이 대립하는 게임이다.
‘성형열풍’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없다면 가치갈등도 없을 테고, 합의도 이뤄질 수 없다. 한마디로 토론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에서 입론은 토론의 출발점이다. 또한 주장이 있다한들 논리적인 근거로 자신의 정(正)을 제시하지 못하면 누구에겐가 또 다른 생각을 주입받을 수밖에 없다. 성형을 반대했다가도 찬성으로 기울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을 정했으면 그 생각을 구체화시켜 자기세계를 뚜렷이 보여야 한다. 씨는 저절로 나무가 될 수 없다. 물, 태양, 공기의 꾸준한 공급이 필요하다. 하나의 생각이 보이는 결과물로 그러나기 위해선 근거를 찾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反)을 통해 정(正)을 검증하라

상대방은 공격을 통해 경기자에게 스트레스와 위협을 주지만 단점을 보완해 실력을 키우게 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다. 입론을 통해 공개한 자신의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모순을 잡아내어 질문하는 반박과정은 입론자에게 또 다른 생각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답변을 통해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튼튼하게 다지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반(反)과 정(正)의 시소게임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에 다양한 가치들을 만나보면서 그동안 갇혀있던 자기 세계의 골방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게임의 법칙은 엄격하다.
특히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상대가 감수성이 예민한 대상일 경우엔 방식과 절차의 중요성이 더욱 크기 때문에 교육원에선 아카데미 대회식 토론방식을 따르고 있다.
합(合)으로 갈등의 통합을 이끌어내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평화로운 사회가 아니라 죽은 사회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상대가 존재한다.
그래서 언제나 시끄럽고 조용했던 군부독재시절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개인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성 속의 일치를 보이는 모습 또한 존재해야 한다. 토론은 갈등을 통해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합(合)을 이루기 위한 입장표명이다. 적절히 수용하는 모습과 남을 인정하는 자세를 토론을 통해 배워야 한다. 입론으로 밝힌 자신의 정(正)이 갈등의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이것이 합(合)이고, 자신의 또 다른 정(正)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정·반·합의 이 어려운 변증법을 간단한 토론을 통해 습관적으로 몸에 익히고 있는 것이다. 학습이 아닌 감각으로 말이다. 문의 1688-8214
기고/ 최은희 원장 (사)대한논리속독학회 영통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