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학교교육은 쓰기를 못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 중심의 객관식 문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평가방식이 이렇다보니 맞춤법을 모르는데도 국어 1등급을 받은 고등학생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제 아이들에게 지식의 ‘저장’을 넘어 ‘표현’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한 때 ‘창의성’을 무기로 난리법석을 떨었던 논술시장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면서 ‘충분한 글쓰기 연습’이라는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제 아무리 뛰어난 창의력, 논증력, 비판적인 사고력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쓰기’라는 그릇 없이는 그것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채점자와 만나는 것은 아이의 글이다. 여기서 글은 곧 그 아이가 된다. 그래서 논술의 마지막 종착역은 결국 ‘쓰기’일 수밖에 없다.
바뀐 교육제도는 남자들을 울린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리고 있다. 수석은 이미 여자들이 모두 차지했고, 합격률 또한 우위를 지킨다. 남성중심의 사회보호막을 걷어낸다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교육부가 제시한 미래 인재상과 논술과 서술형 평가 등의 바뀐 교육제도는 지적활동 중심으로 자란 여자 아이들을 더욱 웃게 만드는 반면 신체적인 활동에 주력하여 글과는 거리가 멀게 자라온 남자 아이들을 더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오죽하면 이들을 위해 ‘예쁜 글씨’ 학원까지 생겨났겠는가.
교육 현장에서 지켜봐도 같은 학년의 남자와 여자는 독서량과 토론, 쓰기 실력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 중 쓰기 능력의 차이가 특히 심한데 쓰기를 통해 아이의 논리적인 사고와 총체적인 언어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체계적으로 쓰기교육을 시켜라
어려서부터 쓰기를 따로 떼어서라도 공부시킬 필요가 있다. 단지 베껴 쓰거나 남이 쓴 글을 모방하는 훈련이 아니다. 글의 구조를 익히고 내용을 논리로 담아내는 기본소양 닦기로 보아야 한다.
대개의 아이들은 생각은 있는데 정리가 안돼 표현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머리에서 손까지 내려오는 게 힘들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들이 문장 만들기부터 시작해 중심문장 주고 뒷받침 문장 쓰기, 단락 나누기, 개요짜기, 서론, 본론, 결론 구성 등 기본적으로 쓰기에 필요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는다면 논리를 단계적으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을 일정한 틀에 담아낼 수 있다.
이 기본은 어려서부터 쌓는 것이 좋다. 기본이 일찍 마련될수록 응용의 시기가 당겨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논술 답안지가 똑같은 이유는 이 과정을 논술시험 막바지에 날림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어려서 기본 틀을 잡아놓으면 나중에 자기만의 틀을 가지고 자신의 관점을 담아내게 되어있다. 교육원에서 줄기차게 쓰기특강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강의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이 다양한 갈래의 글을 읽는이가 아닌 글쓴이 입장에서 볼 수 있어 독해가 수월해졌고, 묘사부터 예시까지 내용전개방식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어 표현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일기보다 에세이를 쓰게 하라
아이가 일기를 써도 글의 발전이 없다면 에세이가 그 대안이다. 사실 일기는 관점 없이 하루일과를 기록한 글에 불과하다. 글에야 익숙해지겠지만 그것뿐이다. 차라리 오늘 겪은 일이나 보고 들은 것 가운데 하나만 잡아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아이의 관점과 사고력, 관찰력을 향상시키는데 백배 도움이 된다.
'학원차에 내려서 집에 오기까지 5분 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오늘 나의 아침은 왜 우울했나?’ 넓이가 아니라 깊이로 승부하는 글이 에세이다. 글의 생명은 사실이 아니라 관점이며, 글의 힘은 세상에 대한 기억력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력이다. 에세이를 생활화한 아이는 줄거리에 치중하여 쓴 다른 아이의 감상문보다 훨씬 독창적으로 서술한다.
익숙한 글과 발전된 글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논술은 바로 발전된 글을 요구한다.
문의 1688-8214
기고/ 최은희 원장 (사)대한논리속독학회 영통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