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에서 도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작은 4층 건물에 작은 글씨로 수원외국인 노동자 쉼터라는 간판이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라샨(42) 씨는 이곳 쉼터에 출입 한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저….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라는 기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라샨 씨는 “몰라요”라는 말만 남기더니 사무실 밖을 나가버렸다. 수원역 방향으로 뛰어가던 라샨 씨는 한 빵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조용히 사정을 말하고 수원역사 내 의자에 앉았다.
-“한국말 잘하세요?”
“잘해야 일을 하죠.”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죠?”
“지금 일 없어요. 아파요. 의사가 간암이라고 했어요. 고치려면 돈 많이 들어가는데…. 저 돈 없어요.”
-“돈 없으면 밥은 어떻게 먹어요?”
“쉼터 가서 라면 먹어요.”
라샨 씨는 타슈켄트 서북쪽 베르누이스호 거리의 인력시장에서 일당 1만숨(약 8천원 정도)을 받고 일을 했다. 부인이 급성 폐렴으로 숨지며 남겨진 네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고통에 노동 입금이 비싼 한국행을 선택했다.
처음 일한 곳은 수원의 작은 재활용 침대공장. 하루 2시간씩을 자며 매트리스 프레임을 짰다. 사장은 3개월의 입금을 체불시키며 결국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공장장한테 돈을 받아달라고 수없이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라샨 씨는 장안구 조원동에서 15만원짜리 월세를 살다 지금은 노숙자들과 함께 수원역에서 지낸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에요?”
“일하고 싶어요.”
-“치료부터 해야죠.”
“안 돼요. 아이들 어머니한테 맡겼는데 돈 줘야 학교 보내고 밥 먹어요.”
기자는 라샨 씨를 위해 흰 우유 한 개를 자리에 남기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주노동자 100만 시대인 2008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