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맛' 잃은 ‘획일적 현대화’

‘돈 먹는 하마’ 재래시장… “변해야 산다’ ‘주객전도 재래시장’ 대형마트 흉내내기 급급

대형마트의 등장을 놓고 재래시장 상인들은 ‘괴물의 출현’이라고 표현한다.

이 짧은 한마디에 재래시장상인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재래시장은 쇼핑의 편리함과,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원스톱’의 대명사 대형마트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재래시장상인들은 대형마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한편, 동경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생계를 위협받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대형마트의 현대화 시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된 남문시장 활성화는 수백억원을 들여 시장별로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도로 정비, 외벽 공사 등을 벌이는 등 시설현대화에 치중했다.

의류를 판매하는 한 상인(영동시장 내)은 “대대적인 성형에도 찾는 고객들은 되레 줄고, 매출은 뚝 떨어져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 한다. 왜일까?

이를 놓고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관내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재래시장이 아무리 현대화 시설을 갖춘다 해도, 자본력을 갖춘 대형마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대형마트를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차별성 없는 거리 구성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문시장에 분포한 9개 시장 중 일부 시장을 제외하곤 주력 상품의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시장 특성에 맞도록 특화시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던 계획과는 달리 점차 획일화되는 것도 문제로 도출되고있다. 획일적 현대화 작업의 결과다.

또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는 “맞벌이 가정 증가와 차량 이용자 급증 등 잠정적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현대화 시설을 하면서 이들 소비자를 위한 시설이 아닌 상인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주객전도의 결과를 가져왔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놓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 달에 2~3회 한꺼번에 ‘장’을 보는 가정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들을 유치하려면 ‘저렴한 가격이나 먹을거리의 싱싱함’뿐만 아니라 주차장 등의 시설 확충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또 카드사용 비율이 현금 사용을 추월하고 있음에도 아직 카드 소액결제를 거부하는 점포가 있는가 하면, 아예 단말기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다. 콩나물 값 1천원 등에 카드를 사용하기 어렵지만, 남문 시장 내 공동 결제시스템을 도입해 이런 불편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선 상인들의 의식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남문시장의 현대화 시설 및 중장기 계획의 연구용역을 담당한 시장경영지원센터 김영기 책임연구는 “지금까지는 열악한 기본 인프라 구축이 가장 시급했다”고 전제한 뒤 “앞으로는 상인들간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재래시장을 위한 상생의 길”이라고 조언했다.

수백억원을 들여 재래시장을 ‘대형마트화’해도 상인들의 주인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아무리 좋은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도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상인 중심의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에서 벗어나 ‘소비자’ 중심의 자구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 관계자는 “상인들의 경영마인드를 고취하고자 CEO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누구의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인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