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1)]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김승종 / 시인, 전 연성대 교수

 

2023 계묘(癸卯) 새해를 하루 앞둔 임인(壬寅) 년 마지막 날에 친구 모친의 부음을 듣고 빈소에 가 조문하였다. 향년 90세. 곧 이 세속 너머 저편에 실재하는 서방정토 불국(佛國)에 안착할 그녀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사별하고 홀몸으로 세파를 견디며 4남1녀를 길렀다. 평생 고생만 하였다고 거듭 탄식하는 친구. 하지만 그녀의 생애는 그래서 비범하고 그녀가 겪은 난경(難境)과 신산(辛酸)은 슬하 남매의 성취로 이어졌다. 

세속의 기준에서도 그 성취는 평균 이상이며 무엇보다 모친을 배워 과묵한 가운데 남매는 겸양과 안분으로 사회와 소통하면서 전문 직능으로 이 나라 현실에 기여하고 있다. 장래에 더 큰 성취가 기대되는 내외손이 열한 명이기도 하다. 

죽령(竹嶺)을 되넘어 질주하는 서치라이트를 따라 사위의 어둠을 헤치다가 어머니, 세속의 질고를 감당하며 자신의 목숨 이상으로 언제나 한 손바닥 안에 드는 자식을 기른 모든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모든 어머니는 누구의 위대한 어머니. 우리는 왜 내 어머니를 빼고 주변의 그녀들을 아주머니나 할머니나 노인네로만 여기는가.    

말고삐 놓아버린 엄마를 수선한다

툭하면 말의 태엽 풀려버린 엄마를

말들은 혀를 붙잡아 미궁 속에 가둔다

아버지는 목숨 줄 잇는 부동의 나사였다

굵고 큰 두 손으로 그녀를 미당기며

수시로 풀어진 말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아버지 몸에서 나사들이 흘러내렸다

휘청이는 길 위에서 비스듬히 선 그에게

엄마는 얇은 손으로 나사를 돌린다

                             -「부부 수선공」/정상미

집에 돌아온 늦은 밤에 한 계간지를 펼쳤다. 필시 연분이 있어 조우한 이 시조도 우선 친구의 모친과 친구의 심정을 다시 연상하게 해주었다. 자주 ‘말의 태엽 풀려버린 (생전의) 엄마’. 엄마는 어떤 기분에서 말하기가 싫거나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화자는 안다. 

일찍이 남편과 이별한 엄마는 자신의 인고를 입 밖으로 발화하지 않고 자신의 저 어두운 가슴 한 구석 숨긴 공간에서 토로한다고. 피동처럼 보이지만 혀를 단속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엄마의 말이니까 엄마 본인이며, 그곳에서 엄마가 진술하는지 그 여부를 사실 잘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럴 것인데, 거기서 유폐되는 건만은 확실하다고 화자는 단정한다. 

또 그곳의 그 말이 과연 어떤 말인지 추정해보아도 제대로 알 수는 없다고 짐짓 시사한다. 걱정과 비탄, 심지어 얼마든지 자학과 원망도 있을 것이라고 가늠할 수는 있지만 엄마의 표정에는 그 내색도 없기에 아무래도 애매모호할 뿐. 그래서 그곳을 굳이 ‘미궁’이라고 제시한다. 

하지만 그러나 화자는 아무래도 막연하나마 알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날 생계를 꾸렸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미당기며 과묵한 어머니를 말하게 하지 않았나. 아버지가 더 이상 가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혹은 별세하자)[‘몸에서 나사들이 흘러내’려, ‘휘청이는 길 위에서 비스듬히 선’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녀린 ‘얇은 손’으로 나사를 돌려 아버지를 바로 세운다. 남편이 이전에 자신에게 나사를 ‘조였다가 풀었다가’ 했듯이. ‘나사’는 그러니까 ‘목숨 줄 잇는 부동의 나사’, 즉, 가족의 삶과 미래를 견인하는 사랑과 헌신이다. 부부는 때때로 자신과 상대의 그 ‘나사’를 수선하며 자식을 기른다. 사생(死生)을 초월하여. 아마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부부 수선공’일 것이고, 우리는 수긍할 수 있다.  

2023년 계묘 새해 벽두, 새해의 서기를 호흡하면서 이 작품을 천천히 읽고 우리가 끝으로  다시 음미할 부분은 첫 수 첫 행, ‘말고삐 놓아버린 엄마를 수선한다’일 것이다.

 

□ 필자 김승종 

1957년 경북 안동 출생. 1975-1976년에 수원에 본산을 두었던 〈시림(詩林)〉 동인 활동을 하였으며,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5년에 『시와 시학』에서 등단하였고, 안양의 연성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하였다. 시집 『머리가 또 가렵다』 『푸른 피 새는 심장』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