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박물관에 다녀왔다.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특별 이동전시가 열린다는 보도자료를 받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안개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치과치료를 마친 아내와 점심을 한 후 팔달문부터 동쪽 화성성벽을 따라 걸어서 창룡문까지,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걸어 수원박물관으로 갔다.
땀을 식히느라 야외에 전시돼 있는 송덕비며 불망비, 고인돌, 묘표 등을 찬찬히 둘러 본 후 박물관 3층 로비에 전시돼 있는 ‘매헌의 꿈, 시에 담다’ 전시물을 꼼꼼하게 훑어봤다.
예상과는 다르게 단촐한 전시회였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상하이 의거 90주년(2022년)을 기념해 이동전시용으로 기획한 것인데 윤 의사가 남긴 시문 자료를 근거로 그의 사상 형성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유촉(遺囑)시, 이력서 등의 모형·사진·이미지 등을 볼 수 있다.
수원박물관에서는 1월 24일까지, 이후 26일~3월 1일에는 수원광교박물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2019년 6월 2일부터 5일까지 중국 항일 유적지를 답사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터였다.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 동행했다. 탐방단은 상하이(上海) 루쉰공원(魯迅公園)과 중국위안부 역사박물관, 임시정부와 만국공묘, 자싱시(嘉興市) 김구 선생 피난처를 방문한데 이어 항저우(杭州)로 이동,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 어느 한 곳이 없었다. 특히 상하이 루쉰공원에 있는 매헌 윤봉길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는 통곡 같은 울음이 치밀어 올라 참아내느라고 힘들었다. 하지만 눈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탐방단 대부분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현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본 전승 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때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가 즉사했다.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등은 중상을 입었다.
윤 의사는 5월25일 사형선고를 받았고 12월19일 스물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일제는 윤 의사의 유해를 가나자와 형무소 출입구에 파묻고 일본인들이 그곳을 밟고 다니도록 했단다.
1930년 3월6일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아내와 첫아들(둘째 아들은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을 남겨두고 ‘큰 뜻’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글귀를 남겼으니 이미 목숨을 포기한 상태였다.
이번 순회전시회에는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시가 소개됐다.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란 부제가 붙은 시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아라./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하략)’
윤 의사는 의거를 앞두고 현장 훙커우공원을 답사한 뒤 숙소로 돌아와 김구 선생을 만났다. 김구 선생이 “최후를 앞두고 경력과 감상 등을 써 달라”고 했다. 이 때 김구 선생에거 건넨 유시(遺詩) 4편은 2005년 공개되어 보물로 지정됐다.
그의 유시 중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글은 또 있다. ‘신공원(훙커우공원)에서 답청(踏靑)하며’다.
1932년 10월 윤 의사의 ‘자술서’에도 이 유시가 언급되어 있다.
“상해 신공원의 식장을 미리 조사하러 갔을 때 내가 밟은 잔디가 그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다시 일어서는 것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인간도 또한 강한 자로부터 유린되었을 때 이 잔디와 하등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단히 슬픈 감정이 샘솟아 났다. 그 감정을 유서로 썼다.”는 것이다.
대표적 한국 근현대사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몇 년 전 한겨레신문에 이 시를 설명한 바 있다.
“무성한 봄풀들이여/내년에도 봄기운 돌아오거든(明年에 春色이 일으거든)/ 왕손과 더불어 같이 오게나(王孫으로 더부러 갓저오세)//푸르른 봄풀들이여(靑靑한 芳草여)/내년에도 봄기운 돌아오거든(明年에 春色이 일으거든)/고려(高麗)강산에도 다녀(단녀)가오//다정(多情)한 봄풀들이여(芳草여)/금년 4월29일에/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盟誓)하세.
4월27일 훙커우공원은 초록의 봄풀 잔디로 가득하였는데, 이 잔디는 윤 의사와 마찬가지로 강한 자로부터 짓밟히는 동료이자, 이에 항거하여 다시 일어서는 동지였던 모양이다. 시의 3연에서 윤 의사가 그런 봄풀 잔디와 더불어 4월29일 수류탄을 던지는 의거(방포일성, 放砲一聲)를 맹세했다는 것은 그가 풀처럼 아무 가진 것이 없는 약자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살아나는 자연의 천리와 함께한다는 자부의 표현이기도 하여, 자못 그 의미가 심장하다. 윤 의사는 1연과 2연에서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을 내년에도 봄풀 방초(芳草)와 함께할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의사가 떠난 뒤에도 한 번도 빠짐없이 봄은 왔고, 방초는 무성히 자랐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천년만년 풀들은 새싹을 키울 것이다.
그리고 윤 의사를 비롯한 독립 영웅들의 의거 역시 천세만세 사라지지 않고 전해질 것이다.
많은 시민이 수원박물관, 또는 광교박물관을 찾아 위대한 정신의 승리를 함께 느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