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광교산 문암골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다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한동안 광교산에 가지 못했다. 13번 버스 종점, 또는 광교저수지 둘레길 정도만 돌다가 내려오곤 했다. 오르는 건 아직 문제가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산길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계단길이 더했다.

무릎이 고장 난 건 아니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아래로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는 산보다는 평지길을 선호하게 됐다. 수원천길, 행궁동 골목길, 서호천길...코스는 날마다 다르다. 목적지 없이 발이 이끄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오늘은 정처(定處)가 있다. 광교산 문암골이다. 신선과 도교에 관한 글을 읽다가 최치원이 다녀갔다는 광교산 문암(文巖)이 생각났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종로에서부터 수원천을 따라 올라가면 광교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수변 데크길 중간쯤 오른쪽에 문암골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고속도로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오른쪽 개울 건너 작은 등산로가 나온다. 개천 옆의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문암이다. 큰 바위 아래에는 치성을 드린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술잔이며 그릇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사람들이 이 바위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광교산 문암골에 있는 문암. (사진=김우영 필자)
광교산 문암골에 있는 문암. (사진=김우영 필자)

1899년에 나온 ‘수원군읍지(水原郡邑志)’에는 ‘문암(門巖)’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문암은 광교산에 있다. 풍수지리 비록에 ‘우리나라에 문암이 3곳 있다’고 하였다. 최고운이 3곳을 두루 편력하였으나 가장 이 바위를 사랑하여 암자를 지어 기거하였으며 우물 밑에 구리주머니를 묻었다고 한다”

수원근읍지에는 최치원과 관련된 기록이 또 있다.

“종루(鐘樓)는 광교산에 있다. 예부터 전하는 말에는 산중에 89암자가 있고 이 봉우리에 다락을 이룩하여 종을 달았다고 해서 종루봉이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 오늘에는 태봉이라 일컫는다. 풍수지리 비록에 고운 최치원이 태봉에 올랐다고 한 것을 보면 태봉이 본명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최치원은 문암에 암자를 지어 기거하면서 종루봉에 올랐다는 것이다.

문암에서 치성을 드린 흔적. (사진=김우영 필자)
문암에서 치성을 드린 흔적. (사진=김우영 필자)

 

어려운 때 정좌한 채 장부 못 됨을 한탄하나니

나쁜 세상 만난 걸 어쩌겠는가.

모두들 봄 꾀꼬리의 고운 소리만 사랑하고

가을 매 거친 영혼은 싫어하누나.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네.

장한 뜻 세운들 어디에 말하고

세상사람 상대해서 무엇 하겠나.   -최치원의 시 ‘곧은 길 가려거든’

 

최치원은 12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 18세 당나라 과거 빈공과에 장원 급제했으며 881년 25세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어 이름을 떨쳤다. 884년 28세 귀국해 조정에 등용되지만 진골 출신 귀족들에 밀려 산으로 들어간다.

광교산에 올 때 그의 마음은 위의 시와 같았을 것이다. 세상 사람을 상대하는 대신 나무와 풀,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 위안이 됐을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최치원이 화엄 불교를 중시하는 불교 사상을 가졌다고 한다. 아울러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에 고변이란 인물을 통해서 금단도(金丹道)를 중심으로 신선도(神仙道)를 이해하였고, 재사(齋詞)를 작성하면서 유교의 ‘좌국부민(佐國扶民)’ 사상과 관련된 도교 사상을 익혔다”고 밝힌다.

내심(內心)을 닦아 사람을 구제하는 불교에 토대를 둔 수련적 신선사상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중국 양주에는 최치원기념관이 있으며, 종남산 자오곡 금선관에는 신라출신의 도교 도사 김가기와 함께 최치원이 모셔져 있다.

중국 종남산 금선관에 모셔진 최치원 전신상. (사진=김우영 필자)
중국 종남산 금선관에 모셔진 최치원 전신상. (사진=김우영 필자)

2014년 (사)화성연구회 중국문화재 답사길에 중국 서안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종남산 천자곡 꼭대기에 지어진 지상사에 갔었다. 신라 의상대사가 공부하던 절집이다.

지상사에서 내려오는 길 자오곡에 들렀다. 신라 사람 김가기가 이곳에서 도를 닦았단다. 조정의 백관과 구경꾼 등 산골짜기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낮에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금선관 위에 있는 현도단이 그 자리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선종 때인 859년 2월 25일 조정의 백관을 비롯한 수많은 구경꾼들이 산골짜기를 메운 가운데 오색구름이 일어나고, 학이 우는 소리, 퉁소와 생황소리가 나고 새 깃털 덮개에 경옥 바퀴를 단 수레가 온갖 깃발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수많은 무리의 호위를 받으며 김가기 선인은 하늘로 우화등선(羽化登仙) 했다. 2008년 한국과 중국은 기록에 따라 김가기 선인이 우화등선했다고 하는 자오곡에 금선관이라는 도관을 세웠고 지금도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 종남산 자오곡 금선관 오르는 계단. 위의 봉우리가 현도단이다. (사진=김우영 필자)
중국 종남산 자오곡 금선관 오르는 계단. 위의 봉우리가 현도단이다. (사진=김우영 필자)

 

돛 걸고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만리에 통하는데

뗏목 탄 한나라 사신과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을 생각한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하늘과 땅은 태극 안에 있구나

봉래산이 지척이니 나 또한 신선을 찾아간다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

 

우화등선이라...도교를 깊이 연구한 최치원도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한가한 날 다시 광교산 종루봉과 문암에 가면 최치원의 선기(仙氣)를 느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