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카톡으로 옛 사진을 보내왔다. 요즘 모습과 아주 대조되는 20대 중반의 그와 나. 눈이 부시다 못해 찬탄의 빛을 반사할 지경. 사진 설명을 달지 않았지만 같이 공부했던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의 졸업식 사진’이었다. 두 사람의 허리 아래에 시선이 다시 멈추어졌다. 낯설기도 낯익기도 한 그 두 사람은 손잡고 있었다. 아니 당시에 그와 이토록 친밀했었나. 그런데 어째서 그동안 서로 소식 한번 없었나. 아니 그날 헤어지는 분위기에 젖어 장래의 성취를 기약했던 그냥 청운의 동작이었나. 무모하고 부실한 지난 이력처럼 빨랐던 세월에 비틀거렸다. 그런데 같은 국면을 동기로 출현한 듯한 다음 시는 그 심정과 심사의 결이 다르다.
스냅 사진 한 묶음이
등기로 날아왔다
오소소 명치끝에
매달리는 그해 봄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운 대다 멀어지는
- 「진달래 스물」/김숙희
‘그해 봄날’, 즉 ‘진달래 스물’ 시절의 옛 모습이 마치 등기로 우송되듯 어느 날 분명하게 상기되었다는 것인지, 그 시절에 같이 사진을 찍었던 친구가 화자에게 등기우편으로 그 사진들을 보내주었다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어느 쪽이든 ‘생생하게 현전(現前)하는 그 시절의 모습’이 전경(前景)으로 부각된다. 전자라고 해도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옛 사진’이 모티프이며, ‘가슴속 사진’은 실제 사진보다 더 선명하다!(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에서도 비슷한 취지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것들이 ‘오소소’, 즉 소복하게 ‘명치끝’으로 쏟아져서 거기서 매달린다고 하였나보다.
그런데 그 사진들은 정지하지 않는다. 사운 댄다. 가볍게 이리저리 자꾸 흔들린다. 요즘 피어나 티끌 같은 미풍에도 다소곳이 흔들리는 봄꽃의 꽃술처럼. 계속 그렇게 정지하지 않아서 화자는 그것들을 제대로 파지하려고 하여도 미묘하게 그럴 수 없고, 그러다가 ‘명치끝’의 ‘그해 봄날’은 멀어진다.
이 종결 묘사에는 섬세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화자의 시선과 의사(意思). 그 사진이 사실 흔들리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그 시절 모습을 음미하려 하지 않는 듯, 집착하려 하지 않는 태도로 짐짓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그 시절을 사진에서 보거나 문득 그 시절이 떠올라 급소를 찔린 듯 간절하여도, 무너지지는 않는다. 세월에, 그때와 현재와의 간극에도 어떤 유감이나 탄식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자의식은 대조에서 발생할 탄식이나 실망을 회피하려하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이 시의 기본 정조는 승화에 가까운 어떤 여유이며, ‘스냅 사진 한 묶음’을 수식하면서도 화자의 자의식과 시선과 무관하다 할 수 없는 ‘사운 대다 멀어지는’의 이면에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지난 세월에 의연하겠다거나 지난 사연을 외면하겠다는 태도도 아니다.
그런데 옛 사진을 다룬 시인의 다른 시에서 화자는, 옛 사진을 보며 찌를 듯이 대드는 지난 ‘시간의 말’을 의식하고 있다.
문갑 위 사진틀엔 늙지 않는 웃음 있네
채석강 단층 같이 쟁여있는 시간의 말
일제히
한목소리로
오늘도 대지른다
- 「귀살쩍다」 일부
‘늙지 않는 웃음’ 그때와 그 이후 연속되는 자화상들, 그리고 현재가 대조되고 있다. 현재의 내게 과거 복수의 내가 투척하는 모종 항의를 화자는 의식하며 흔들리고 있다. ‘오늘도’. 하지만 화자는 역시 의연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기세와 유감에 무너지지도 않는 듯하다. 외유내강 견인의 태도인가.(과거의 나도, 무너지기를 바라지는 않는 듯. 만약 그렇다면 문갑 위에서 스스로 퇴장하지 않았을까)
두 시를 읽으며 우리에게 추억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임하는 양해’와 ‘감내하는 성찰’. 물론 둘 다 우리 일회성 삶에서 소중하고, 어느 쪽이 혹 더 궁금한지는 시인이나 화자에게가 아니라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두 시를 다시 읽는다면, 이 시들이 자수율 형식을 원용한 시, 자유시보다 더 정제될 수도 있지만, 의미의 축약과 확산이 구애되어 그 언어구사가 더 어렵기도 한 ‘시조’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변화와 지속의 리듬’과 어우러진 이미지와 메시지는, 이 봄날, 독자 여러분들의 ‘명치끝’에서도 매달려 사운거릴 여러분의 어떤 ‘그해 봄날’을 발생시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