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187) 딸기 ‘설향’ 이야기

정준성 주필

요즘이야 개량 덕분에 사시사철 지천인 딸기지만, 과거엔 귀하신 몸이었다. 더위에 약한 딸기 특성 때문에 12월 재배 4~5월 수확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3월의 과일’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 남녀노소 호불호가 없는 딸기는 그러나 과일이 아니라 채소에 속한다.

그럼에도 과일이라는 인식이 박혀 과채로 분류된다. 과일과 채소 중간이라는 얘기다. 딸기의 표면에 박혀있는 알갱이도 대부분 씨앗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딸기의 진짜 '열매'다.

우리가 열매로 여기며 먹어왔던 빨간 부분은 꽃받침 부분이 과육으로 자라난 '헛열매‘다. 딸기의 오해와 진실이다.

품종과 모양이 가지가지인 요즘 딸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재배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토종인 산딸기와 복분자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딸기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칠레다. 18세기 유럽을 거쳐 19세기 일본에 의해 국내로 들어왔다.

일제하인 1920~30년대 부유층 먹거리로 재배됐다. 농사는 1943년 송준생이 일본에서 모종을 들여와 경남 밀양에 심은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딸기의 첫 대량 재배지는 수원이다. 1955년 서울농대가 있던 수원시 권선구 탑동(塔洞) 505번지 일대에 서울농대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철준이라는 사람이 신품종 딸기 대학1호를 재배한 것이 효시다.

물론 품종은 일본 것이었다. 당시의 딸기는 크기가 작은 재래종뿐이었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딸기는 알이 굵고 껍질이 얇으며 깨끗하고 신선했다.

따라서 찾는이도 많고 해마다 재배면적도 늘어나 3만여 평에 이르렀다. 그 주변을 합치면 7만여 평에 달했을 정도다.

이곳이 바로 70~80년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딸기명소 ‘푸른지대’다. 지금은 개발에 밀려 자취조차 없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생산 딸기 70%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다. 2005년까지 로얄티를 지급했다. 물론 중간에 국산 '매향'이 개발됐지만 열매가 작아 경쟁이 되지 못했다.

그동안 일본 품종에 밀려 9.2%에 불과했던 국산 딸기 품종 점유율은 지난해 97.8%까지 높아졌다.

2005년 순수 국산 딸기 품종인 '설향' 탄생 덕분이다. 이후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국산품종은 많다. ‘매향’ ‘킹스베리’ ‘금향’ ‘설화향’ 비타베리‘ ’하이베리‘ 등 18종에 이른다.

그중 재배가 쉽고 수확량도 많을 뿐 아니라 당도와 산도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것은 역시 ’설향‘이다.

시중에 판매하는 딸기의 85%를 차지한다. 우리가 먹는 딸기는 십중팔구 ’설향‘인 셈이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K-과일'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종자도 수출한다.

지난 1월 650만 주의 딸기 묘가 베트남으로 떠났다. 로열티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설향‘은 우리나라 대표 수출 농산물로도 유명하다. 한해 수출액이 6467만달러(2021년 기준)로 우리나라를 딸기 수출국 세계 5위에 올려 놓았다.

주요 수출시장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와 대만이다.  한국을 찾은 이들 나라의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과일도 딸기였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의 ’영화‘ 였지만 말이다.

여행금지 빗장이 풀린 요즘 방문 외국인들에게 딸기의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는 소식이다. 반갑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산지 시설 재배농가의 속은 그리 편치 않다고 한다.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화분매개곤충’ 즉 수정벌 이용이 필수인데 벌 공급 받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올해는 더욱 심하다고 한다. 증식부진 탓에 수정벌이 귀하신 몸이 됐기 때문이다.

마침 요즘 많은 과수(果樹)가 개화기다. 꿀벌의 수가 줄어들어 수정률을 걱정하는 과수농가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관계당국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