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26)] ‘좌우로 나란히’와 ‘내 생의 등’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시 소개를 하면서 시의 화자와 이야기의 나이에 같은 세대라면 쉽게 또 더 공감하고, 아니라면 관심이 옅거나 아예 거리를 두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좀 뒤척이다가 기우(杞憂)로 낙착하였지만 소진되지는 않고 있다. 쑥스럽지만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를 다시 중얼거려본다. 인간 이해와 휴머니즘 고양. 그렇다면 그 어떤 시도 우리는 그저 인간으로서 『인간』이란 책의 한 단락을 읽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웃옷

그냥 모양만 봐

나란히 팔 벌리고 서 있는 두 사람 같지

 

웃옷 같은 사람들이

좌우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몇 벌의 질서를 지켜야만

팔 벌려 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웃옷 같은 사람들이 

마음 한 복판에 모여 있어

 

내리지 못하는 팔과

모으지 못하는 발과

계속해서 걸쳐지는 기분으로 서 있어

 

오늘도 입을 사람이 없니

네가 물었어

 

나는 다시 

웃옷

그냥 모양만 봐

 

달려가는 두 사람의 옆모습 같아

손을 잡고 달려가는 사람들 같아

                                          「웃옷」/김민지

 

 화자와 화자가 설정한 ‘네’와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우리는 ‘네’가 누구인지도 궁금하다. 이 시의 전체 맥락으로 보아 또래 친구가 아니라 보통 수준을 넘어서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어떤 존재가 아닐까. 아니라면 화자 자신일 수도 있겠다. 

 ‘네’는 이미 대답을 아는 듯하지만, 화자에게 묻는다. ‘오늘도 입을 사람(‘웃옷’)이 없니’. ‘웃옷 같은 사람들이/마음 한 복판에’ ‘내리지 못하는 팔과/모으지 못하는 발’로 ‘걸쳐지는 기분으로 서 있어’란 화자의 토로에서 우리도 예감하였듯, 화자는 ‘나는 다시/웃옷/그냥 모양만 봐’라고 반복(강조)할 뿐이다. 내심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좌우로 나란히’ 선 ‘웃옷 같은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는 태도, 아니 그 추종[착복(着服)] 거부는, 이들이 옷걸이에 걸려 ‘그냥’ 벽에 걸려 있으며, ‘몇 벌의 질서를 지켜야만’ 겨우 ‘팔 벌려 뛰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팔 벌려 뛰기’는 팔과 발뿐만 아니라 몸통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작으로, 모든 운동의 기초. 그러기 위해 치러야 하는 ‘몇 벌의 질서’라면 그 ‘질서’는 참 끔찍하고 괴이하며, ‘지켜야만’은 그대로 읽히면서도 ‘어겨야만’의 반어로 읽히기도 한다. 이 시의 문제제기가 ‘기성 관습과 제도 참여와 순치(馴致) 여부’라면, 오늘 MZ세대의 관점과 내면의 불안과 불만의 그림자로 그 이해에 크게 자양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좌우로 나란히’를 우리 사회가 유사 이데올로기 두 진영으로 갈려 획일화되어 있는 모습, 그 풍자로도 읽을 수 있다. ‘손을 잡고(서로 구속하고)’ ‘달려가는’ ‘옆모습 같아’란 탄식. 경멸이기도 환멸이기도 하며, 우려이기도 분노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하며, 차라리 통쾌하게 할 것도 같다. 그래서 다음 시도 뜻깊게 읽었다.  

   

 원고에도 핸드폰 문자에도 나의 하루는 오자투성이다. 오 오 오 (誤 - 誤) 틀렸다고 고치라고 잘못됐다고 귀청을 울린다. 툭 툭 툭 빛살 아래 소나기가 우득우득 떨어지더니 굵은 빗줄기가 사납게 튀어 내 생의 등을 때린다. 잘못됐다고요! 어디서 함성이 우박처럼 떨어진다. 그래, 나 많이 틀렸다. 오자투성이다. 글자도 틀리고 시간도 틀리고 길도 틀리고 정신도 틀리고 잘못됐어요! 누가 창을 두드린다. 요란하게 천둥 치더니 다시 우박이 떨어져 내린다. 과수밭에 사과 알이 우둑우둑…… 쇠고랑까지는 안 갈라나? 그래, 나 많이 틀렸다. 내친김에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 삐뚤어진 것은 뼈가 녹아 오그라진 것은 생이 다 굽어 삐뚤어진 것은 

 ……그래, 나 많이 틀렸다. 글자는 고치되 생은 고쳐질지 몰라

 하늘이여! 교정이 되는 것이 옵니까? 

                                                  「오자(誤字)투성이」/신달자   

  

 일상에서 일상을 넘어 우리 인간과 삶의 근본 문제의 하나인 불완전성을 자성(自省)으로 제기하는 이 시. ‘사납게’ ‘내 생의 등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 ‘떨어져 내’리는 ‘우박’에 ‘과수밭에 사과 알이 우둑우둑……’. 화자의 오류 고백은 ‘귀청을 울’리지만 그래서 속 더 시원하고, 더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