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에
오점 무당벌레가 앉아
눈 오는 거리를 보고 있다
눈은 참 많이도 온다
며칠은 더 쌓일지도 모른다
무당벌레가 어디에서 내릴지 몰라
버스를 내리지 못하고 계속 갔다
종점에서도 무당벌레는 내리지 않았다
반대편 거리에 눈은 수북이 쌓이고
버스는 달렸다
무당벌레는 인내심이 강하다
무당벌레는 눈 내리는 인간의 마을을 좋아한다
무당벌레는 인생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당벌레 곁에 앉아
함께 가는 동안
눈보라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꿈꾼 이승의 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침묵 속에서 하얀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천지간에 수북이 쌓인 눈발 속에서도
인생이란 얼마나 침착하고 의젓해야 하는지
버스 창의 성자에게 가만히 묻는 것이었다
- 「동행」/곽재구
폭우에도 그러하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일상에 아무리 골몰하고 있어도 우리는 그 풍경을 주목하며 어떤 일탈을 한다. 무미한 관습 못지않은 주변 사물이 지워져 가는 낯선 정경은 퇴화된 심미감각을 자극하며 일상 너머로 우리를 인도한다.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식이 새로워지며 깊어지기에 일탈이라기보다는 축복의 낭만 시공에 우리가 임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일상이란 얼마나 제한되고 천박한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치졸하고 덧없는가.
길고 긴 하얀 점묘로 풍경이 바뀌는 시간에 화자는 버스에서 자신처럼 밖을 유심히 주시하는 차창에 ’앉은’ 무당벌레를 발견하고, 그 모습에서 ‘인생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자신이 처리해야 할 용건을 아예 버리듯 잊고 무당벌레를 따르기로 한다.[이런 사람에게 사장은 화내다가 한숨 쉴 것이고, 화자 역시 한숨 쉬며 미안해할 것이지만] 그런데 ‘버스 종점에서도 무당벌레는 내리지 않았다’. 오던 길을 버스는 되돌아가지만 눈보라가 멈추지 않는 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가부좌 사색을 이어갈 것이라고 화자는 믿는다. 그리하여 드디어 화자에게 무당벌레는 ‘그‘가 되고, 화자는 그와 그가 ‘찾고 있는’ ‘인생의 무엇인가’와 그가 ‘꿈꾼’ ‘이승의 영화(榮華)’를 문답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인생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안다. ‘침착하고 의젓해야’ 한다...
그런데 인생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사실 화자의 화두이다. 차창 밖 자욱한 눈보라를 화자는 주시하며 그렇게 자신에게 질문한 것이다. ‘이승의 영화’에 어울리게 곱고 ‘침착하고 의젓’한 ‘무당벌레’의 자태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태도를 새삼 각성하는 진술일 수도 있다. 문질빈빈(文質彬彬).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눈보라’를 더욱 주시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처럼 세속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전환시켜주는 우악(優渥)한 매체로 연장해도 좋고, 다르게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눈보라. 격변, 유전(流轉), 크고 작은 아이러니, 상황 전복, 우연, 허망, 희생, 억울, 탄식 등등이라 할 수 있고, 무상한 칠정(七情)이나 다기한 이해관계, 감내하기 어려운 욕정의 자력(磁力)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화자는 그를 드디어, ‘성자(聖者)’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 ‘침착과 의젓’에 지나친 연결이 될지 모르지만, 일찍이 수행된 공자의 관련 통찰을 소개한다. “군자는 경솔하면 위의가 없고, 공부해도 공고(鞏固)해지지 않는다. ‘자기충실’과 ‘신의’를 위주로 살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과오가 생기면 서슴없이 고쳐야 한다.(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