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30)] 늦었지만 빠르기도 한 어떤 사랑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그래요, 한때는

삶을 함부로 낭비하기도 했죠

 

보잘것없다 여기며

그저 바닥나길 기다린 적도 있죠

 

후회는 없어요

그것도 하나의 방식이지만 

 

탕진의 시절은 지나갔어요

나는 삶을 사랑하기로 했어요

 

삶을 사랑하기로 한 건 

그게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 「어떤 사랑」/유병록

 

 느닷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동의를 하거나 긍정을 표출하듯, ‘그래요’라고 시작하는 이 시의 첫 메시지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갖가지 이유로 우리는 ‘한때는 삶을 함부로 낭비하’였거나, 현재 그러고 있지 않는가. 화자가 일방 자문자답하는 것 같지만, 이미 우리는 화자가 초대한 작중 인물이 되어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바로 뒤에서 쫓듯 들리는, 자신의 삶을 ‘보잘것없다 여기며’에는 좀 겸연쩍어하면서. 그리고 ‘그저 바닥나길 기다린 적’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그 낭비를 아까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훼손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가. 우리는 여러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였고, 우리의 일부는 세상의 질서를 강요로 받아들였기도 하며, 세상의 모순과 비리에 항거하고 시비를 떠나 자신과 세상을 조롱하고 염세에 빠지기도 하였다. 나아가 우리는 대체로 인생의 시간에 때가 있고 끝이 있다는 말씀에 귀를 열었으나 아무래도 대범하였으며, 또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소년 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죽이 되었건 밥이 되었건 자신의 삶이 거듭 뭐 ‘보잘것없다 여기며’ 그리 사랑하지 않았기 쉽다. 아니 시간 아까운 줄 몰랐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처럼 되돌릴 수 없자 묻지 않는데도 이제 와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듯 강조하기는 하지만, 결국 ‘탕진’ 운운하는 순간이 도래하고, 돌아온 탕자처럼 몰래 고향의 동구(洞口)에서 투박한 지팡이 짚고 은밀히 탄식한다. 그리고 그 자각을 계기로 시의 화자는 우리처럼 ‘삶을 사랑하기로’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 하지만 어쩌랴, 이런 시행착오 행로가 인생이려니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수통에 물이 조금 남아 있고 해서 병아리처럼 한 방울을 한 모금으로 알며 살자며. 

 그런데 화자는 여기서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5연에서 ‘삶을 사랑하기로 한 건/그게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에요’라는 고백. 아니 ‘보잘것없기 때문’이라고? 후회와 남은 나날이 짧아서가 아니고? 또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1연에서부터 묘하게 유지되어 오던 공감과 연대가 훼손된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런데 이도 잠깐, 끝 연을 읽으면 금방 복구된다.       

 그리고 이 순간 바로 그래서, 우리의 일부는 의심한다. 화자가 지난날에 ‘삶을 함부로 낭비하’며, ‘보잘것없다 여기며/그저 바닥나길 기다린 적도 있죠’라고 하였는데, 이 술회를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건지.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과장 여부를 떠나, 자신의 지난 삶을 ’보잘것없다 여기며’ ‘함부로 낭비’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자신의 삶과 시간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미숙과 결여, 혹은 오만과 과욕 따위로 그러지 못했거나 유보하였던 자신을 아프게 자성(自省)한, 그 완곡한 왜곡의 언급, 자기 위로의 부끄러운 선처가 아닐까. 그래서인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 진술은 우리의 내면에도 늘 잠재해 있던 작은 목소리인 듯하다. 

 이 시는 우리에게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자기연민 같은 편향과 자기혐오 같은 과장을 물리치고, 자신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정시하며 ‘삶의 낭비를 후회하지 않는 용기(?)’, 바로 그 용기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세속의 기준에서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란 부연은 사족이기는 하나 소중하고 필요한 사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