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34)] 무당의, 외딴집 오두막 할미의 사랑 이야기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다양한 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이해하려하기도 하다 보니 매미 소리도 무더운 오후가 지나가는데, 다음 시의 첫 문장을 읽고, 눈이 크게 떠지고 머릿속에서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다른 시들의 화자들, 남녀노소로 다르고 화제도 관심도 다르고 고민도 주장도 다 달랐지만 모두 요즘 평범한 이웃들이었는데, ‘무당’이라니! 근년에 상봉한 적이 없는, 아니 이제까지 문학작품에서 한 번도 조우한 적 없었던 것 같은 특별한 화자. 이승과 저승의 안개 낀 경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존재. 그 무당이 토로하는 이야기라면 그 내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겠다 싶어 횡재한 기분. 그러면서도 2023년 현재 과학기술의 이미지와 정신의학의 통찰과 대조되면서 기대만큼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굿당 차리고 을매 되지 않았을 때였지 한날은 경주 안강 사는 노인네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나를 부르데 고추가 빨갛게 야물 때니 가을이었어 가보이 마 그런 오두막이 조선 천지 또 있겠나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없는 외딴집에서 할미 하나가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굿쟁이를 맞더라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죽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단지가 젤로 값나가는 살림 같더라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당달봉사 앞에서 징은 쳤다만, 사실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오만 귀신 다 불러제끼며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무당보다 더한 팔자 가엾어 디립다 두들겼다만 아무도 답을 안 주더라 정처 없이 저무는 저녁 답 내내 징만 울더라    

                                                      - 「징」/권선희

 

 도시에서도 먼 촌락에서도 꽤 떨어진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없는 외딴집’에서 혼자 사는 ‘할미’에게 어떤 사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당이 동료 무당들에게 후일담으로 풀어놓는 이야기나 그 독백을 우리는 엿듣는다. 아니다. 무당이 우리와 마주 앉아 우리에게 수다를 떨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 어느 쪽이든 문제없지만, 일인칭 화자가 묘사하는 이 보기 어려운 상황을 더 향유하려면 이왕이면 후자에 서기를 권유한다. 무당과 상황과의 사이에 있는 한 겹이지만 장막을 제친 듯한 소통 효과와 더불어 참여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유학 불교 기독교의 세례를 받기 이전에 발생하여 그 이후에 가늘고 길게 이어져 오는 우리의 오랜 고유의 무속을, 우리의 대다수가 신앙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문화양식으로 접수하며 이행할 수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월 초파일을,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를 우리의 대다수는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 

 각설하고, 우리는 한 번 더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죽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단지’를 무당과 더불어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다른 건 다 할미만큼 흐려도 그 골분단지가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건, 할미가 매일매일 정성들여 닦으며 살폈기 때문이고, 할미가 굳이 신기(神氣) 갓 내린 영험한 무당을 찾아 제 부실한 집으로 부르고,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영접한 것도, 바로 이 ‘남편’을 다시 보려는, 다시 보고 싶은, 그 애타는 심정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당달봉사 할미가 그 외로운 외딴집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모습을, 산 귀신처럼 물끄러미나마 볼 수 있으며, 그 할미 앞에서 ‘징’을 열심히 치는 무당의 동정과 팔자타령 심정에도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오만 귀신들을 원망하면서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같이 항의하며 계속 징을 같이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처 없이 저무는 저녁 답 내내 징만 울더라’는 무당의 슬픈 마지막 술회를 묵묵히 듣다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각성을 하게 될 것 같다. 첫째, 죄 지은 사람을 귀신이 징벌한다. 둘째, 죄지은 사람도 영매인 무당을 통해 간절히 뉘우치면 귀신이 용서할 수 있다. 셋째, 무당은 우리와 차원을 달리하여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우리의 염원과 고통을 영계에 대리하며 우리보다 더 인정(人情)을 지닌 존재이다. 넷째, 할미는 지은 죄가 없어 해를 끼친 귀신이 있을 수 없고, 그래서 아무리 무당이 징을 치며 오만 귀신을 다 찾아도 나타날 귀신이 없다. 다섯째, 지은 죄가 없어도 사람은 사랑을 상실하며 불행해질 수 있다.

 저무는 저녁 답, 차츰 잦아들 징 소리. 그 소리가 배어드는 붉은 노을에 비정한 다섯째 메시지가 제일 부각될 것 같고, 우리는 한숨 쉬며 바라보다가 분노와 반항 섞인 답답한 심경이 이윽고 의외에도 편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