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35)]  블룸과 라스콜니코프의 바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우리는 자신을 미워한 적이 있고, 이 괴로운 분열, 부정의 심경이 앞으로도 가끔 야기될 것을 알고 있다. 어떤 후회나 유감이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도덕적 자아의 발동과 성찰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일상에서 문득, 우리 내면의 어떤 상태를 자각하고 그런 심경에 사로잡히고 만다. 자신의 욕망과 심리 그 자체의 부조리와 집착에 어이없고, 절제하여도 쉽지 않는 그 기괴한 동력(動力)에 더 당황스럽다. 우리의 그 의식과 무의식은 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율리시즈』(1922)에서 묘파한 이래, ‘인간 이해의 하나’로 새삼스러운데, 하지만 우리는 ‘의식의 흐름’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의지(意志)의 흐름’이 자율 병행하고 있다는 자각을 확인하고 자긍한다. 근간에 벌어진 도착된 그 욕망 표출 범죄들은 아무래도 병증의 발로이며 제한된 사례일 뿐이다. 한편,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 세상의 갖가지 갈등과 죄악의 원인이 자기 자신의 과분한 욕망에서도 비롯된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실의 이해에 눈감거나 굴복하여 그저 억울하다고 한탄하면서 남과 남의 소행을 비난하고 비방하기에만 여념이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결국 자신을 속이기 어렵다. 주희(1130-1200)가 ‘무자기(毋自欺 : 자신을 속이지 마라)’를 권면했지만 결국 인간은 자기를 속이기 어려운 양심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의 자기실망과 자기증오는 당연하다고 할 것인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죄와 벌』(1866) 등 여러 걸출한 작가들이 쓴 명작이 있지만 인간의 이야기에서 이 주제가 어찌 반복 반복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고의로 시비를 제쳐두고 이해를 따지는 집단최면 비슷한 진영갈등에 시달리는 오늘 우리에게 다음 시는 요즘 아침저녁 부는 미세하지만 신선한 한 줄기 가을바람 같다.

      

나는 바다로 간다

기댈 곳이 바다뿐이기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으면

바닷가에 서 있으면

 

나는 사라지고

나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파도 소리와 바람, 유유히 흐르는 구름 떼

푸른 빛 바다뿐이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나는 보이지 않고, 바다만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그게 너무 좋아 자꾸만 바다로 간다 

 

바다에 있으면 나는 공기가 되고, 파도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된다

모래밭에 앉아 하늘을 보면

하늘 또한 더없이 푸른 바다다

 

나는 꼼짝 않고 그 모든 것을 느끼고, 느끼고, 느끼고

그러다 내가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면 

그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 

오랫동안 그 바다에 포개지고, 잠기고,

그 바다에 하나가 된다

 

마치 내 조상이 바닷속 한 물고기인 듯

마치 내가 바닷속 한 물고기의 딸인 듯  

               - 「내가 인간인 것이 싫어질 때」/김상미

 

 ‘바닷가에 서 있으면//나는 사라지고/나는 보이지 않는다.’ 광막한 푸른 바다가 하늘과 하나 되어 시야를 넘치고 미물인 나를 포용하면, 고민이 있든 없든 누구나 화자와 같은 상태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물리와 아집의 현실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바다를 보는 자아를 의식에서 지속해서 불식할 수도 없다. 화자도 그래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나는 보이지 않고, 바다만 있다’고 진술하고 있지 않는가. 화자는 자신과 자신의 그 무엇을 의식하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바라보며, 자신이 ‘공기가 되고, 파도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된다’고 하였으나, 그러기를 희망한다는 강력한 기대로 읽히며, 나아가 ‘마치 내가 바닷속 한 물고기의 딸인 듯’ ‘그 바다에 하나가 된다’고 한 진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화자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궁극을 기원한다. 나, 나의 이기(利己) 욕망과 그 욕망에서 빚어진 갈등과 분쟁으로부터 일탈할 수 있는 비상한 순간. 무상(無想)이 아니라, 무상(無償)과 무상(無相)의 행복한 순간을 영접할 수 있는 경지 도달. 이 경험을 축적한다면 우리는 아마 무릎의 필요 없는 털 하나도 양보하지 않는 거칠고 어두운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고 상승 같은 하강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시의 다음 ‘조심(操心)’ 시구에 두 손 모아 합장한다.  ‘그러다 내가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면/그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  

 사족 : ‘내가 인간인 것이 싫어질 때’, 우리는 바다에 가지 않아도 나쁘지 않으리. 우리는 이 시에서도 바다를 보았고, 자신의 바다를 잘 상상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