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36)] ‘웃자란 슬픔이 어디 한둘일까’
우리 삶의 영원한 기초는 그 누구도 이의 없이 ‘의식주(衣食住)’이다. 그 누구라도 옷을 입어야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며, 작든 크든 잠자고 쉬는 문안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굳이 문제시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 순서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삶의 기본 필요를 우선 순서대로 제시한다면, ‘식의주(食衣住)’라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여간 인간도 일단 먹어야 살 수 있다. 옷과 집이 아무리 어떠어떠하다고 해도 먹지 못하면 죽는다. 귀신 중 가장 처참한 형상이 ‘아귀(餓鬼)’이고, “사흘 굶어 거지 되지 않는 사람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등등, 먹어야 하는 인간의 처지를 절박하지만 여상스럽게 부각하는 속담도 많다. 우리는 다음 시를 읽고 ‘의식주(衣食住)’보다 또 ‘식의주(食衣住)’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콩나물국 한 사발이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지
목울대를 타고 넘던 설움도
뜨끈한 국물 한 숟갈 떠 넣으면
가슴 저 바닥으로 밀어낼 수 있지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거든
새빨간 고춧가루 확 풀어낸
콩나물국 한 사발 비워내고는
너무 매워 흘린 눈물인 양
손등으로 쓱쓱 훔치면 되지
사나운 슬픔이야 왜 없을까
뜨거운 국물 한술 뜨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설움일랑은
눈물 섞어서 말아놨다가
내일이나 모레 어느 날
슬픔이 잦아들 때 먹으면 되지
너와 내가 마주한 밥상위에
웃자란 슬픔이 어디 한둘일까
아삭거리는 아픔 또한 적지 않아도
웬만한 세상살이 설움이야
얼큰하고 시원한 콩나물국 한 사발이면
슬퍼할 새도 없이 흘러가는 거지
그리 사는 거지
- 「콩나물국 한 사발」/오광수
이 시를 읽기 시작하면 ‘눈물 섞인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과는 삶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금언이 언뜻 상기되고 낯설지 않은 인상을 주지만, 그 구체는 무척 다르다. 시에서 언급하는 슬픔이 어떤 슬픔인지부터 독자 여러분과 같이 정리했으면 한다. 1연에서는 ‘웬만한 슬픔’, 2연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 3연에서는, ‘한술 뜨기도 전에/터져 나오는’ ‘사나운 슬픔’이다. 농도가 다른 슬픔의 종류들. 그리고 화자가 권유하는 해법도 정작 다르다. 각각 ‘콩나물국 … 뜨끈한 국물 한 숟갈’, 새빨간 고춧가루 확 풀어낸 콩나물국 한 사발’, ‘눈물 섞어서 말아놨다가’ ‘슬픔이 잦아들 때’ 그 콩나물국 먹기.
이런 구체 사정이 다정하고 나지막한 어조로 독백인 듯 아닌 듯 진행되고 마지막 4연에서, 우리는 화자의 초대로 화자와 직접 마주하며, 의외의 ‘한 소리’를 듣게 된다. ‘너와 내가 마주한 밥상위에/웃자란 슬픔이 어디 한둘일까’. ‘웃자라다’는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많이 자라 연약하게 되다’란 뜻. 화자는 이어서 상기 슬픔들은 사실 ‘웃자란 슬픔’이며, 누구나 겪으며, ‘얼큰하고 시원한 콩나물국 한 사발’이면 감내할 수 있는 ‘웬만한 세상살이 설움’에 불과하다고 짐짓 강조한다. 즉, 사람들은 왜 유독 내게만 이다지도 슬픔이 가혹하냐고 탄식하기 쉬운데, 엄살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알지 못한 의식의 과장, 감상(感傷)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길어지는 신세타령에서처럼 우리의 슬픔에도 자아의 주관 경향도 개입되어 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행복도 그렇지만 슬픔도 깊이와 크기에 절대 기준이 있을 수 없다.
이상을 기초로 우리가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그런 진술의 이면에서 확장 병렬되고 있는 ‘식(食)’의 의미이다. 이 행위는 생존 조건의 충족에서 그치지 않고, 자꾸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침잠하려는 자신을 일으키는 용기가 저변에서 감돌고, 슬픈 자신을 더욱 학대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며, 상처를 위로하고 무언의 활기를 고무하는 의식(儀式). 외래의 능멸과 치욕을 오히려 승화하는 방편. 한탄과 원망을 절제하고 인내하는 실존의 행위. 음식을 씹는 ‘저작(咀嚼)’ 행위는 결국 일상의 삶에서 일탈하지 않으면서 혹 누추한 삶이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긍정하고 사랑하는 동작으로 고양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시가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이미 먹방도 한창 유행을 지난 듯한 세태. ‘눈물 젖은 빵’은 없는 것인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시장에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가려졌을 뿐, 숨기고 있을 뿐. 밥상을 차리려면 어떤 슬픔도 따라올 수 있다. 이 시는 그 ‘밥상’에 필요한 ‘콩나물국 한 사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