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문학 강좌가 있다. ‘세상에 인문학을 앞세운 강좌가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사설에까지 언급하는가’하고 의아해 할 독자들도 있겠다. 이 강좌는 수원에 있는 쉬즈메디병원 이기호 원장이 사비를 들여 13년째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무료로 여는 독특한 강좌다. 2010년부터 시작해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 3년을 제외하고는 빼놓지 않고 개최됐다.
강사는 각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강의실은 항상 시민들로 빼곡하다. 공무원들도 퇴근 후 서둘러 강좌에 올 정도다.
2010년 단국대 ‘임두빈 교수와 함께하는 미술사 강의’가 인문학 강좌의 시작이었다. 이기호 원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던 아내의 조언으로 2010년 고대미술과 한국미술 강의를 열었는데 평판이 좋아 현재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부터는 중학교와 군대 동기인 안병우 전 한신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인문학 강의로 정착했다. 지금까지 무려 200회가 넘는 강의가 이루어졌다. 강좌도 매년 상하분기 새로운 주제로 진행된다. 강사비와 현장 답사비 등엔 이 원장의 사비가 투자됐다.
“병원 홍보용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겠지만 이 원장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힌다. 그는 한 지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것은 30여 년 간 병원을 운영하면서 받은 시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인문학을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가족과 주변을 더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강좌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 다시 인문학 강좌를 시작한 것이다. 19일 첫 번 째 강의는 ‘불화(佛畵)에 부여된 생명력과 신성성, 불복장의식’으로 이용윤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가 맡았다. 이를 시작으로 ‘그림에 담긴 삶의 여유와 희망’이라는 주제로 내년 1월까지 모두 10강으로 진행된다. 이승희 순천대교수, 최엽 동국대교수, 황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신선영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박정애 전남대교수 등이 불화(佛畵)와 풍속화, 아시아의 호법신, 조선사람들이 사랑한 글씨와 그림, 김윤보의 ‘형정도첩’, 그림으로 보는 조선의 도시경관, 개화기 미술시장과 서양인 수집가들, 감로도 등 흥미로운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더욱 고마운 일은 별도 신청 없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또는 대형병원이 아닌 개인병원 원장의 뜻으로 오랜 세월 계속되는 인문학 강좌는 놀랍다. 아름답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