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39)] 추석 보름달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음력 8월 15일(9월 29일) ‘추석(秋夕)’을 맞이하며 독자 여러분과 ‘달’을 기린 최근 시를 읽고 싶었다. 문학잡지 셋과 시집 둘을 펼쳐 찾았는데, 간신히 단 한 편만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시 이외에 달을 그 일부나 한 주요 이미지로 다룬 시도 없었다. 흠 아니 어째서. 좀 허전해하다가 곧 유감을 중단하였다. 닐 암스트롱(1930-2012)이 1969년 7월 20일에 달에 내려 족적을 남긴 이래 54년. 인류는 그간 달 탐사를 계속해 왔고, 지난달 23일에는 인도의 달 탐사선의 로봇 프라기안이 극한의 달 남극에서 광물 등 탐사 활동을 하지 않았나. 달은 더 이상 인류의 선망과 소망의 대상, 미지 미답의 영원 신비한 유토피아가 아니게 된 것인가. 

 하지만 우리가 추석을 맞아 귀성하거나 집에서 머물거나 경치 좋은 콘도를 빌려 가족이 단합하며 쉬거나 오순도순 가까운 해외에 여행을 가거나, 추석날 밤하늘에 뜬 고고(孤高) 교교(皎皎) 보름달은 지상 추석의 유구한 상징. 대자연의 질서로 이 세계에 회정(回程)해온 가을 수확의 운기(運氣), 그 청진한 조명(照明)이자 발현이다. 인류 삶의 통과의례(通過儀禮)에서 한 영원한 지표이리.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벌써 이런 말이 들려온다. “보름달이 밝은 줄 몰랐더냐.”    

 

상현달도 달이요

하현달도 달이요

 

그런데 말이외다

상현달을 하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

하현달을 상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

 

보름달이 웃겠소

 

상현달이면 어떻고

하현달이면 어떻소

달은 달일 뿐이오

 

우리는 오천 년을 함께 살다가

칠십 년을 헤어져 살았소

 

상현이요, 하현이요

아웅다웅들 좀 하지 마소

함께 둥그러져 보름달이 됩시다

 

저 하늘 둥근 보름달처럼!

                                - 「보름달」/리춘렬

 

 ‘저 하늘 둥근 보름달처럼’ 우리 원만한 하나가 되어, 차이와 구별과, 그것들에서 파생되는 온갖 저열한 갈등과 창피한 대립을 해소시키자는 화자의 제언은 옳고 옳지만 낯익다. 그런데 이 시의 시인이 중국에서 사는 동포란 사실을 감안하고, 이 시가 현재 남북 한민족 전체를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는 전제를 상기하면, 화자의 제언을 우리는 다시 음미해볼 의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상현달과 하현달이 남과 북을 지칭한다고 여기며 모처럼 ‘분단 한반도’를 추석 보름달과 선명하게 대조하며 살필 수 있는 진중한 기회를 얻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고 정상이 아니고 부조리한 분단, 세계 유일의 적대 장벽. 이제 메말랐지만 억장(億丈) 높이의 한(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아니 이미, ‘상현달을 하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하현달을 상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란 질문에, 화자의 의도와 의사를 물론 양해하면서도, ‘아니오, 믿지 않소’라는 심경 한 켠에 웅거한 대답을 소멸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달은 그 임재 시기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모양도 서로 너무 다르다. 상반(相反). 그렇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 또 우리는 날로 늘어나는 북의 핵 위협에 그저 수세인 우리 형편에 답답해하며 피아 대등한 ‘아웅다웅’ 운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화자는 이미 그런 대답을 예상하고, ‘보름달이 웃겠소//상현달이면 어떻고/하현달이면 어떻소/달은 달일 뿐이오//’라고 강조한다. 역시 우리는 따르기 어렵고, ‘오천 년을 함께 살’았지만 오히려 짧았고, ‘헤어져’ 산 ‘칠십 년’은 남침과 억울한 동족살육 3년의 비참과 그 후속 천안함 피격 등등으로 너무 길다는 심정이다. 

 핵 있는 한반도에 추석날에 뜨는 달은 보름달이 아니다. 그저 반쪽인, 상현달이거나 하현달일 뿐. ‘상현달을 하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하현달을 상현달이라고 하면 당신은 믿겠소?’ 다시 말해 이 질문에, 우리의 답변은 '핵 없는 한반도라야 그때 가서라야 믿겠소’일 것이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벌써 또 이런 말이 들려온다. “보름달이 밝은 줄 몰랐더냐.” 아아 그러나, 우리 오는 추석날에, 차마 버릴 수 없는 이 시의 순수하고 순진한 소망과 권유를, 머리에는 그렇더라도 가슴에는 허용하고 기원하자. 둥근 보름달을 우러르며 그 맑은 달빛으로 흉측한 껍데기만 남은 이데올로기와 집착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남북의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통일을 기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