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41)] 처마에 매달린 가을의 쉰 목소리
녹을 온몸에 받아들이는 종을 보았다
암세포 서서히 번지는 제 몸 지켜보는 환자처럼
녹은 아름다웠다
움켜쥐면 바스락 흩어지는 버즘나무 가을은 저 홀로 깊이 물들었다
나는 지금 녹물 든 사람
링거 수액 스며드는 혈관 속 무수한 계절은 피어나고
거품처럼 파꽃은 피고
박새가 부리 비비는 산수유 가지에 노란 부스럼이 돋아나고
두꺼운 커튼 드리운 병실 바깥의 고궁
처마에 매달린 덩그렁 당그랑
쉰 목소리
파르라니 실핏줄 돋은 어스름 속으로
누가 애 터지게 누군갈 부르나니, 그 종소리.
- 「내 아름다운 녹」/장옥관
가을은 성취와 조락의 계절, 그러나 ‘움켜쥐면 바스락 흩어지는 버즘나무 가을은 저 홀로 깊이 물들었다’에서 보듯 화자에게 가을은 조락과 성취의 계절, 아니 조락으로 성취가 이루어지는 계절이다. 그리하여 그 표상으로 단박 내세워진 이미지가 ‘녹을 온몸에 받아들이는 종(鐘)’이다. ‘녹을 온몸에 받아들이는 종’[풍경(風磬)]에는 회피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녹을 순응 수용하는 종의 자세가 은근히 드러나며, 오히려 우리는 그 자세를 능동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화자가 그런 종을 ‘암세포 서서히 번지는 제 몸 지켜보는 환자처럼’ 의연히 바라보았고, ‘녹은 아름다웠다’고 해도, 이 의외의 진술들에 우리는 크게 혼란을 겪지는 않으며 그 이유를 그 다음 시행에서 찾을 수 있다.
화자는 ‘나는 지금 녹물 든 사람’이며, ‘두꺼운 커튼 드리운 병실’에서 ‘링거 수액’을 맞고 있는 중이라고 자신을 알린다. 병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은 성숙한다고 하던가.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녹은 아름다웠다’는 진술은 역설이면서도 역설이 아니며, 우리도 화자와 비슷한 태도로 화자의 토로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암과 같은 질병을 앓는 화자는 4연에서 알 수 있듯 지난 과거에 유감이나 후회가 많은 듯하다. 링거 수액(녹물)은 ‘무수한 계절’에 ‘거품처럼’ 핀 ‘파꽃’과 ‘돋아’나는 ‘부스럼’을 상기하게 한다. ‘거품처럼’ 핀 ‘파꽃은 아마 상실을, ‘돋아’나는 ‘부스럼’은 아마 결핍을 지시하는 듯하며, 각각 성취 관련 표현들인 ‘피고’ ‘돋아나고’로 제시되고 있어, ‘녹은 아름다웠다’에서 융기된 파문이 일관되게 지속되어 주목을 끈다. 그러나 이러한 회상에는 화자의 처지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가을에 겪는 감상(感傷)의 정조가 개재되어 있다고 하겠다. 감상은 나이와 경력과 무관하며 겸허의 나머지 미덕일 수도 있고 실제를 주시하지 못하는 과잉 감수성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곧 우리의, 화자에게서의 작은 일탈은 중지되고 산발(散發)된다. ‘처마에 매달린 덩그렁 당그랑’. 병실 바깥 고궁(故宮) 처마에서 들려오는 종[풍경]소리. 이 소리, 이 소리는 화자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의 저변에도 깔려 있던 그 무엇을 일깨운다. 잊었지만 그런 채 상존하던 그것을 두드리는 소리는 또 우리의 예상을 넘어 우리가 듣던 맑고 청랑한 음조가 아니다. ‘쉰 목소리’. 이도 이전 맥락으로 보아 역시 일탈이 아니면서도 일탈이라고 하겠다. ‘거품처럼’ 핀 ‘파꽃’과 ‘돋아’나는 ‘부스럼의 심화와 확대이면서도 그 성질이 다르다고 할 전환이 동시에 일어났다. 일탈과 일관의 교호 맥락이 유지되는 그 연쇄의 면모는 평범한 듯하지만 이 시의 비범한 성취이며, 우리는 그 다음 결미에서 호흡이 일시에 멎듯 무심할 수 없게 된다. ‘파르라니 실핏줄 돋은 어스름 속으로/누가 애 터지게 누군갈 부르나니, 그 종소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더 어둡게 그 조밀한 점진이 필연인 과정의 한 찰나, 감지하기 어려운 미묘한 경계의 한 순간, 화자는 그렇게 종을 보고 그렇게 그 종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이 시의 발원(發源)은 ‘파르라니 실핏줄 돋은 어스름’과 ‘처마에 매달린 덩그렁 당그랑’일 것이다. 어두워지는 낙조의 해질녘에 고궁 처마 끝에 한 풍경이 매달려 울고 있다. 가을의 삽상하고 처연한 그 소리에, 우리도 우리의 잊어도 잊지 못한 지난 어떤 상실과 결핍의 실루엣을 감지하고, 합장해보자. 숙살지기(肅殺之氣) 가을바람도 불고 있겠지.
사족 : 우리는 이 시의 5연 2행 ‘처마에 매달린 덩그렁 당그랑’에서 드문 심미체험을 하였다. 풍경 소리가 처마에 매달려 있다니. 나아가 이 시구는 ‘애 터지게’를 더 애 터지게 한다. 그런데 그런 ‘쉰 목소리’의 ‘누가’는 누구일까? 혹시 화자 자신인가. 화자가 ‘애 터지게 부르’는 어스름 속’의 그 ‘누구’는 누구일까. 혹시 화자 자신인가... 우리는 한편 이 시가 실제 정경을 다루었지만 3, 4, 5연은 알레고리가 중첩된 양상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두꺼운 커튼 드리운 병실 바깥의 고궁’은 화자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기억 창고로 보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