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흔을 넘겼으나 여전히 청년 같은 푸른 기개의 가형(家兄)이 시 한 편을 가족 톡에 올렸다. 아마 고교 동기들의 톡에서 상봉하고 우리 가족도 한번 읽고 생각 좀 해보라는 권유. 반갑게 읽었는데, 알고 보니 꽤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서, ‘후회 없이 살라’는 메시지로 읽히고 있는 유명한 시였다.
요 앞, 시궁창에서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도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
노래 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 「한평생」/반칠환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고 ‘하루살이’와 ‘매미’의 득의(得意)를 부각하며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우화(寓話) 형식의 이 시는 그 대비의 의도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끔한 일침의 풍자가 교훈에 잘 섞여있어 재미있게 읽힌다고 하겠다. 게다가 ‘모두 한평생이다’란 수렴과 확산의 결구는 우리 모두를 경청하게 하는, 좀 애매한 채로나마 우리의 모종 각성을 촉구하는, 은근하고 부드러운 일갈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중 청장년의 그 각성은 아무래도 3연의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란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는 후회의 탄식에 크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루살이나 매미도 삶을 향유하는데 우리 인간이 그럴 줄 몰라 후회하는 미욱한 삶을 살아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한편 겸손한 자학도 포함해서 어쩌다 그 탄식에 동의하는 칠십 전후라면 이 시구는 아무래도 돌이키기 쉽지 않은 회한(悔恨)을 자아낼 수 있고, 또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거나 않았던 나이 칠십을 새삼 의식하게 하며, 그것도 무슨 강요처럼 그 이상으로 무겁게 느끼게 할 것 같다. 그렇지 않겠는가. ‘가쁜 숨만 남았’다고 하니... 어쩌다 향유(享有)의 여유 없이 보낸 삶, 그 삶이 부끄럽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정전된 듯 불시에 지난날이 어두워지고, 사정에 따라 가지 않았던 길에 진작 거두었던 유감이 검게 회생될 수도 있다. 아무튼 칠십에 이르러 문득 그렇게 각성하다니. 미물이라면 미물일 하루살이와 매미의 삶보다 못한 삶이여, 그리하여 내가 추지 못했거나 않았던 ‘춤’과 부르지 못했거나 않았던 ‘노래’가 무엇인지 갑자기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게 되다니. 그 시구, 참 의미심장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 또한, 불현 듯 들지 않겠는가.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고 자각한다고 해서, 이 자각이 지난 삶을 후회하는 심정만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고. 아닐 수 있다. 오기에서일까. 왜 그런지 돌이켜보니 의외로 그 근거는 바로 이미 음미했던 ‘모두 한평생이다’란 화자의 은근하고 부드러운 그 일갈. 하루살이나 매미나 우리나 거북이도 ‘모두 한평생’이라고? 그렇다면 하루살이의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는 삶이나, 매미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는 삶이나, 나와 우리 중 누구의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 두고/노래 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그러다가 일흔에 이른 삶이나, 또 천년 사는 거북이의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기만 하는 삶이나, 결국 ‘모두’ 저마다 ‘한평생’, 즉 ‘나름대로 한평생’이라 새길 수 있지 않겠는가. 대륙 중국의 옛 현인의 장대한 호흡 어린 말이 상기된다. ‘차부뚜어!’[差不多(차부다)] ‘그래봤자 그 차이가 뭐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쩌다 춤추지도 노래 부르지도 못했거나 않았고, 좋은 날 기다리다 가쁜 숨만 남은 여생, 천 년 생애에 그저 천 년째 걸어만 가고 있는 인생을, 오히려 위로하는 취지의 시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사족 : 또 다른 관점 추가. 후회, 후회는 인생의 실패로 결코 우리가 바라지 않는 비탄의 결말이지만, 사실 우리 미욱한 인생의, 거의 그 종국이 그렇지 않겠는가. 우둔과 타성을 깨닫고도 어느새 반복 반복하는. 그래서 그 미망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럴 수 없이 드디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기 쉽겠고,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자신에게 후회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모두 한평생이다’고 한번 환호(歡呼)처럼 외쳐보는 것도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