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팔달산 산책로를 걸었다. 옛 도청 쪽엔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곧 이곳 산 전체에 벚꽃이 절경을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
나의 오랜 벗 문창갑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꽃눈깨비가 소월의 시처럼 내리는 벚꽃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었네
휠체어를 타고 온 마흔넷, 마흔다섯쯤의 고요한 여인네가
허공에 띄워 올린 비눗방울 말을.
-여보, 나 내년에도 이 꽃들을 볼 수 있을까?
없겠지?
길어야 오개월이라는데······.
나는
이승의 이 아린 한때를 그냥 지나가야 하는 사람
속울음을 삼키며 극진히 휠체어를 밀고 가는
저 여인네의 지아비도 아니면서
홀연히
우뚝 서서,
서러워진 내가 말했네.
볼 수 있지!
내년 봄에도, 후년 봄에도 당신은 이 꽃들을 볼 수 있지!
암, 볼 수 있지!
-문창갑 시인의 시 ‘저 여인네의 지아비도 아니면서’ 전문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무르익은 봄날, 부부가 나들이를 나왔다. 아내는 병색이 완연하고 남편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가 탄 휠체어를 밀고 간다. 아내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5개월, 남편의 속이 어떨지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습을 시인이 보고 있다. “여보, 나 내년에도 이 꽃들을 볼 수 있을까? 없겠지? 길어야 오개월이라는데······.” 일부러는 아니겠지만 부부의 대화도 엿듣게 된다.
시인은 명백한 타인이다. 이 말을 듣고서 가슴이야 아리고 또 아리지만 ‘이승의 한때’를 ‘그냥 지나가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자신의 일인 것처럼 울컥 치미는 서러움에 ‘홀연히’ ‘우뚝’ 서서 말한다. “볼 수 있지! 내년 봄에도, 후년 봄에도 당신은 이 꽃들을 볼 수 있지! 암, 볼 수 있지!”
이 시는 지난해 봄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던 ‘마흔넷, 마흔다섯쯤의 고요한 여인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속울음을 삼키며 극진히 휠체어를 밀고’ 가던 지아비는 올봄 벚꽃을 보며 비로소 펑펑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나도 수십 년 전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침 출근길 성당에서 나오는 운구차를 보고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섰던 적이 있었다. 망자는 겨우 30대인 ‘영철이 엄마’였다. 어린 아이와 지아비를 두고 저승으로 떠나야 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가슴이 아렸고 그 자리에서 시 한편을 쓰기도 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속에는 삶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아내와 그를 지켜봐야 하는 지아비가 있었다.
시인은 「죽」이란 시를 쓴 바 있다.
죽, 이라는 말속에
아픈 사람 하나 들어있다
참 따듯한 말
죽, 이라는 말 속에
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
죽 만드는 또 한 사람 들어있다.
아내의 지아비는 ‘아픈 사람보다 더 아픈’ 죽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환희보다는 슬픔과 상실에 주목한다. 문창갑 시인의 시 역시 그렇다. 그의 천성이 선하고 모질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데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도 춥고 가난한 처지면서 먼저 밥값, 술값을 내려고 했다.
수원에서 창립한 ‘시림(詩林)’동인 활동을 하면서 5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만날 때마다 그의 시와 인품이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창갑은 따듯한 시인이다. 그를 잘 아는 이는 말했다. ‘너무 따듯해서 언제나 쓸쓸함을 그림자처럼 곁에 두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그 여인네의 지아비도 아니면서 걸음을 멈추고 내년에도 후년에도 벚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시인 문창갑.
문창갑 형, 올 봄 팔달산 벚꽃길에서 오랜만에 ‘시림’ 동인 모임을 가질까? 제주 오승철은 먼저 갔지만 이승에 남아 있는 부산의 최영철, 구례의 김해화, 평택의 김미구, 분당의 김승종, 대구의 이정환 등 옛 동인들과 함께 난분분난분분 떨어지는 벚꽃비를 맞아 볼까나?
그리고 그 옛날처럼 팔달문 시장으로 내려와 추억을 안주삼아 막걸리 잔을 부딪쳐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