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66)]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얼마 전에 한 여류 소설가가 필자에게 “현대시를 어렵게 여기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도 심오하나 선명 간결한, 예컨대 이백의 「산중문답」 같은 시, 좀 더 자주 소개해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하였다. ‘저도 그렇습니다’고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시 문제를 지난번에 거론한 적 있다. 필자도 물론 포함하여 독자들이 시를, 우리의 삶을 깊고 넓게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인문의 정제된 거울로 예우하며,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 접근하지만 그 향유가 쉽지 않아 흥미가 떨어지고 회의마저 일어난다는 취지로. 이 문제에 더 답답하고 억울할 수도 있는 시인들에게 참 미안하지만, ‘어쨌든 독자와 소통되지 않는 시라면 대체 무슨 의의가 있겠나’고 쉽게 발설하기 어려우나 하나마나한 불평을 중얼거려 본다. 시가 그 자체 독립된 언어예술이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독자를 의식하고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생산한 공유의 매체이기에 ‘심입천출(深入淺出)’을 창작의 열정에 더 실어 고민해보시기를 감히 기대한다.
‘이백의 「산중문답」 같은 시’, 우선 「산유화(山有花)가 떠오른다.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 : 1902-1934)이 1924년 10월 《영대》 3호에 발표하고 1925년에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한 이래,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자주 애송하고 명시로 평가하고 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산유화(山有花)」/김소월
반복되는 꽃 관련 산속 풍경과 흐르는 세월을 바라보는 화자의 입장에서 「산중문답」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 이 시의 우선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누구나 오묘한 뜻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용어도 생소한 구문도 없고 여러 차례 숙독해야 할 난해한 구절도 없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동의하였듯, 이 시의 메시지는 은연 중 깊고 크다. 일찍이 김동리는 특히 2연 4행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를 주목하고, ‘저만치’가 환기하는 그 함축된 뜻이, “인간과 청산과의 거리”, “인간의 자연 혹은 신에 대한 향수의 거리”라고 해설하였다. 즉 화자가 산속에서 피어난 꽃과 자신과의 간격이 시야에 가깝게 포착된 짧은 거리이고 얼마든지 접근할 수도 있는데도, 굳이 양자의 간격을 ‘저만치’라고 언급한 심사에서 그렇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김종길은 “자연에의 초월이 거의 불가능해진 현대인의 좌절이 숭고한 가락으로 읊어”졌다고 그 해석을 구체화하였다.
두 분이 거론하였는지 확인하지 못하였는데, 두 분의 해석에 관련하여 우리는 3연을 그 보충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 이 3연에는 1, 2, 4연과 달리 화자의 심정이 투영되어 있다. 1, 2, 4연은 화자가 꽃이 산에서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대자연의 영원한 자체 순환을 그대로 노래하고만 있어 객관 시점의 토로이지만, 3연에는 화자의 주관이 의탁되어 있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 역시 ‘저만치’ 있지만, 자신과 자신의 처지와 정서를 투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꽃이 좋아/산에서’ 살지만, 그 꽃과 일체가 될 수 없는...
한편 김동리는 4행을 1연으로 하고 또 4연으로 구성된 이 시의 정제미를 주목하고, 이 시가 형식에서 “기적적인 완벽성”을 갖추었으며, “조선의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한 개의 최상급의 해조(諧調)를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우리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행문(行文) 맥락에 단아하고 쾌적한 리듬이 연속되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자신도 그 가락의 조율(調律)에 협조 참여하면서 메시지를 독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연과 행 구분을 하지 않고 줄글로 이어 읽어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다 알다시피 7‧5조 자수율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내재율의 자유시가 아니라 외재율의 정형시이다. 또 7‧5 자수율에 그대로 따르지 않고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구사를 우선하며 자수(字數)의 응축과 확산을 시의 소질로 적극 활용한 면모가 거듭 주목된다. 7‧5조를 그대로 고집하였다면 1연 1, 2행은 적어도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라고 하여야 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라고 한 결정은 분명 숙고의 결단이다. 그리고 2연,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는 시행의 활발한 변조 배치가 두드러진다. 우리는 특히 ‘산에/산에’를 각각, 한 호흡 씩 들여 읽어야 할 것이다. 아니 이 시의 리듬 구조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유도하고 있다. 뒷날 음보율 개념의 선하(先河)이고, 앞으로도 모든 한국의 정형시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규범이다.
참고로 소월의 정형시는 오산고보 시절의 스승 안서(岸曙) 김억(金億 : 1896- )의 새 정형시론 모색이 그 유래다. 1912년부터 안서는 상징시론 등 서구 시론을 소개하였는데, 1918년에 발표한 창작시론 「시형의 음율과 호흡」에서 내재율 자유시론을 본격 검토하며 자유시 창작을 진작하면서도, 민족의 공통 호흡에 따른 새 정형시 모색과 창작을 당대 시작의 또 하나의 과제로 제시하였었다. 이 때에 소월은 오산고보에 재학하며 안서로부터 시론과 시작을 공부하고 있었다. 7‧5조가 적용된 소월의 시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먼 후일」 「초혼」 「접동새」 등등이 있다. 스승은 이론으로 제자를 일깨우고 제자는 진지하게 창작을 실천하고, 사제의 이 추구는 우리 문학사에 한 불후의 금자탑을 세웠다. 또 두 분에게 영향을 끼친 오산고보의 민족주의 교육도 문학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족 : 소월의 「산유화」를 게시하였다는 청계산, 그 산에 우리 고교 동기들은 지난 월요일에 또 갔다. 그리고 드디어 황금꽃 복수초를 만났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산유화(山有花)’에 거듭 감복하였다.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우리는 여러 꽃들과 인사할 수 있었다. 노루귀, 앉은부채, 현호색, 산수국, 괭이눈, 꿩의바람꽃, 피나물, 할미꽃, 천남성, 제비꽃, 산괘불주머니, 쇠뜨기, 개별꽃 등등. 이날 탐화 소요의 주재자 야천이 선녀폭포 부근에서 말하였다. “찾지 못했던 꽃이여, 길이여, 청계 흐르는 소리에 피어났구나.” 의리의 로펌 임원은 필자가 꿩의바람꽃을 보며, ‘복수초만 못 하네’라 하자, 꾸짖는 표정으로 “꽃 앞에서 감히 미모 등급? 그 몰풍(沒風)을 꽃이 듣기 전에 어서 빨리 사죄하라”고 하였고, 의연한 자영업 종사자는 대열을 힘들게 뒤따라 가다가 합류한 필자에게 “그대 뒤에서 늘 어정거리더니만 아하, 이제 내 앞에 있네 그려. 자라며 모양 바뀌는 앉은부채 노루귀처럼”라고 하였다. 주민센터 봉사로 참여하지 못하고 산 아래에서 기다리던 전직 장군은 힘들게 하산하는 우리를 전화로 격려하였다. “내 당장 그 하늘에 헬리콥터 띄우노라, 꽃향기 간직하고서 어서 오라, 꽃 좀 닮았을 친구들아”. 필자는 이 언급들을 당연하게도 모두 시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