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 장안문 달빛에 막혀
성 밖 새술막거리에서
작부 앉히고 진탕 놀다
흥얼흥얼 노래하며 텅 빈 골목길에 방뇨하고
큰길 나와 바라본 팔달산 서장대 위로
오호 달 떠 올랐구나
달빛
성벽 타고 장안문까지 감싸 안으며
깊고 푸른 해자 만들었다
헤엄칠 수 없고
뱃사공 불러 노 저을 수도 없던 그 물줄기
달빛에 막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 김우영 '장안문 달빛에 막혀'
시인은 이미 술에 젖었다. 그러나 시인을 적신 것은 술만이 아니다. 달빛이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김우영 시인의 시집 『장안문 달빛에 막혀 집에 가지 못했다』의 표제시이다.
시인이 등단 45년 동안 펴낸 시집은 고작 4권이다. ‘고작’이라 했지만, 시인이 시에 관해서만은 결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 세월 함께 술잔을 기울여 온 사람이라면 잘 안다. 등단 십 년도 채 안 되어 그 등단한 햇수보다도 많은 권수의 시집을 내기도 하는 이들과 뚜렷이 대비가 된다. 그만큼 귀한 시집이다.
시인은 ‘성 밖 새술막거리에서/작부 앉히고 진탕 놀다’라고 했지만, 결코 그럴 주변머리를 가진 사람이 못 된다. 보나 마나 전을 부치던 찬모가 손님의 발길도 뜸해질 시간이라 무료함을 달래느라 한두 잔 대작한 정도이리라. 아니면 새술막거리에 진탕 논 이는 시인이 아니라 수원화성 축성에 돌을 뜨고 쌓으러 온 ‘김큰노미’ ‘이자근노미’일 수 있다. 그 옛날 돌을 쪼느라 정에 못이 박힌 손으로 술잔을 받아든 그들의 환생일 수도 있다.
아무튼 시인은 후미진 골목의 선술집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웅자가 장안문이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을 흔든 것은 성문의 웅장함이 아니라 날렵한 부연 끝에 걸린 달이다. 장안문의 옹성은 이미 달빛이 고여 찰랑거린다. 그 달빛이 흘러나와 ‘깊고 푸른 해자 만들었다.’
약수(弱水)라고 했던가. 새의 깃털도 떨어지면 뜨지를 못하고 가라앉는다는 전설 속의 강이.
‘헤엄칠 수 없고/뱃사공 불러 노 저을 수도 없던 그 물줄기’ 시인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팍팍한 우리네 삶에서 발목을 잡는 일을 어찌 그 경우를 다 헤아리랴. 그래도 그 발목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는 물줄기가 달빛이라면 하룻밤 정도는 집에 돌아가지 못해도 좋다.
시인이 시집을 내 기념으로 주변의 몇몇 지인은 한잔 술을 걸친 눈치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얻어먹지 못했다는 것을 사족으로 걸어둔다.
■ 김준기 시인
현) 수원시인협회 회장
현) 수원문화원 부설 수원지역문화연구소 연구위원장
전) 수원시 인문학자문위원회 위원장
현) 수원특례시 인문도시 자문위원
현) 수원특례시 지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