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별은 자제하여도 내심 슬프다. 사별은 더욱 그러하고, 억울한 사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 달 22일에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9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산화한 김태석 원사의 막내딸 김해봄[당시 다섯 살] 씨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는 영상을 등재한 국가보훈부 SNS의 조회 수가 지난 8일에 999만 회를 넘어섰다고 한다. 55용사와 유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국가 안보를 담당하고 있는 국군도 크게 고무되었을 것이다. 일부만 알았던 필자도 뒤늦게나마 그 동영상을 경청하였고, 그 기사에서 편지 전문을 읽었다. 천안함 폭침은 분단 비극 운운하기도 어색한 북한의 야비한 만행, 야간 수중의 일방 기습 어뢰 테러이다. 아니 상처투성이 분단 비극을 대낮 수면 위로 끌어내고 그간 화해 노력을 일거에 파괴하였던 희대의 죄악이다. 원망과 분노로 착잡하다가 문득 이 편지를 시로 여기며, 맥락과 취지를 살리면서 원문에서 다음과 같이 발췌해보았다.
아빠 벌써 봄이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어
이토록 빛나는 3월의 봄
막내딸 해봄이는
왠지 무겁고 괜히 조금 슬퍼지네
내 꿈은 많은 관객들 앞에서 멋진 춤을 추는 건데
춤을 출 때면 너무 행복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내가 지금 이렇게 춤추는 것을 나중에 누가 기억해 줄까
여섯 살 흐릿한 기억 속 아빠는 사진 속 기억처럼 나를 미소 짓게 해
예쁜 척하고 있는 언니들을 앞세우고
엄마와 나란히 선 아빠의 옅은 미소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존경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게 해주어서
이 따뜻한 봄에 함께 활짝 피어날 테니
날 꼭 지켜봐줘
꽃이 많이 핀 날
아빠의 빛나는 봄
햇살 같은 내가 꼭 소식처럼 찾아갈게
아빠의 젊고 멋진 인생 닮은 자랑스러운 막내딸이 춤추듯 고백할게
잘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잘 해낼 거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아빠가 내게 커다란 힘이라는 거 꼭 알았으면
아빠, 사랑해요, 아빠.
- 「해가 빛나는 봄에」/김해봄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막 이행되는 푸른 아지랑이 ‘열아홉 대학 새내기가 맞은 ‘빛나는 3월의 봄’. 그 어느 때보다 아빠의 부재를 이 시의 시인은 의식해야 한다.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무엇이라도 토로하여야. 우선 자신의 변화를 알리면서 마음 상태를 ‘왠지 무겁고 괜히 조금 슬퍼지네’라 하였다. 심정 그대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그 누구보다도 쓸쓸한 자신을 의식하면서도 아빠를 생각하며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러니까 ‘무겁고 슬퍼지네’라고 해야 하고, 이 심정이 있는 그대로지만, ‘왠지’ ‘괜히 조금’을 얹어 자제하고 있다. 그 심정의 크기와 깊이를 줄이는 ‘왠지’ ‘괜히’는, 입장이 아무래도 자신과 다를 독자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바로 아빠를 위한 수사이다. 아빠의 심정도 마냥 ‘무겁고 슬퍼’질까 저어하기 때문. 시인의 이런 심정과 자제된 진술은 사랑과 배려를 아는 모든 사람의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대학 전공을 춤으로 결정했다는 선택도 본인의 재능과 취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빠를 상실한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추정하게 하며, 우리의 이해와 공감이 더 늘어나는데, 막상 ‘관객들 앞에서 멋진 춤’ 추기에서는, 우리의 심정이 좀 복잡해진다. 하지만 시인은 춤을 행복하게 추며 옛 사진에서 빛나는 아빠의, 가족과 함께한 지난 행복한 날 그 ‘아빠의 옅은 미소’를 늘 기억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나아가 자신도 아빠처럼 살아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존경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게 해’, 미래 어느 ‘따뜻한 봄에 아빠와 함께 활짝 피어’나겠다고 약속하며, 다가오는 ‘꽃이 많이 핀 날’에 묘소에 찾아가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 ‘막내딸’의 ‘춤추듯 고백’하는 ‘햇살’의 언어를 시청하고 읽으며 어느덧 서러운 봄빛에 젖어들고 그러면서도 희망의 씨를 틔운다.
사족 : 열아홉 시인은 ‘아빠가 내게 커다란 힘이라는 거 꼭 알았으면’, 하였는데, 이 말은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아빠가 아빠 역할을 하지 못해 슬퍼할까봐 굳이 하는 다정한 말. 정부가 약속하였듯, 국가는 55용사와 유족들은 물론 모든 위국헌신 영령들께 ‘커다란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